[ 본사특약 독점 전재 ]

< Conglomerates on trial, April Economist >

"여러 업종에 손대며 대기업그룹이 되느냐 아니면 한 우물을 파는 업종
전문화를 추구할 것이냐"

이 물음에 대해 경영의 효율을 높이려면 업종전문화쪽으로 향해야 된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젠센같은 교수는 기업이 여기 저기 신규업종에
진출하면서 몸집을 키우는 것 자체를 줄기차게 비판해 왔다.

이같은 사업다각화는 경영자의 "제국"을 건설하는 방편에 불과할뿐 기업의
가치를 높여 주는 "참된 경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증권가에선 아예 대기업그룹주식을 경멸하는 듯한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기업그룹 디스카운트"가 문제의 신조어로 대기업그룹주식은 프리미엄이
붙기는 커녕 투자자들로부터 갈수록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비판으로 대기업그룹이 주력업종을 키우기 위해 사업단위를 통폐합
하는 이른바 "스핀 오프(기업분할)"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도 스핀 오프 재료만 나오면 해당 주가가 급등세를 보인다.

여러 업종에 손을 뻗치며 몸집을 키우는 대기업그룹은 크게 보아 2가지
측면에서 단점을 노출시킬 수 있다.

하나는 의사결정을 지연시키는 공룡같은 "크기"이며 다른 하나는 내부혼란
을 초래하는 조직의 "복잡성"이다.

그러나 실증적인 검증을 해보면 대기업그룹이 문제투성이의 기업조직이라고
판단할 근거를 찾아 낼 수 없다.

오히려 대기업그룹의 시너지효과가 나타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독일에서 업종이 다양하기로 유명한 그룹인 VEBA의 경우 지난 91년 업종
전문화를 포기하고 대신 사업다각화로 경영전략을 수정한후 성공적인
대기업그룹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의 삼성그룹은 1백66가지의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지난 60년대
이후 6년마다 10배씩 성장해온 대기록을 남겼다.

미국에서도 GE(제너럴일렉트릭)는 여러 업종에 진출했지만 지난 79년이후
주주들에게 연간 20.8%의 높은 투자수익률을 선사했다.

이 수익률은 미국내 상장회사의 평균 수익률보다 6%포인트나 높은 것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인 "프리미엄이 붙는 대기업그룹"을
통해 대기업그룹을 공룡으로 간주하는 "대기업그룹 디스카운트" 개념이
편견에 불과하다고 반박할 정도다.

기업의 성공은 업종전문화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경영의 질이 최대
변수라는 분석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대기업그룹이라는 거대한 조직도 경영의 질만 좋으면
시너지 효과를 얻어 디스카운트가 아니라 "프리미엄"을 창출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그룹은 조직내 인적교류를 활성화시키고 인재를 적소에 배치함으로써
또 다른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삼성그룹은 매년 4억달러이상을 인력개발에 투자하는등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보스턴컨설팅의 보고서는 또 대기업그룹내에서 본질적으로 다른 사업부들
이 한가지 목표를 향해 수렴할때 거대기업조직의 시너지 효과를 최고로
높아진다고 밝혔다.

영국의 버진그룹은 음반사업에서 마케팅 기법을 터득해 이를 항공운송업과
금융서비스업에 적용시킴으로써 성공을 거두고 있다.

반면에 영국의 BP는 에너지사업에만 집착하다가 낭패를 본 경험이 있다.

주유소가 점차 식품점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시대를 맞이했으나 정작 BP엔
소매업 마케팅에 대한 노하우가 없었다.

BP의 예를 보면 에너지부문만 파고 들었던 업종전문화가 오히려 기업조직을
구속하는 족쇄로 작용한 것이라고 보스턴 컨설팅측은 설명했다.

물론 보스턴컨설팅은 업종수를 늘려 가면서 몸을 비대하게 만드는 대기업
그룹이 최선의 기업조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GE의 잭 웰치나 버진그룹의 리차드 브랜스회장등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하는 최고경영자가 지휘하는 대기업그룹은 거대조직의 시너지효과를
만끽하고 있는 사실은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대기업그룹의 최고경영자들은 시대조류에 편성해 무조건 업종
전문화를 추구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에앞서 경영진의 장단기 전략이 기업그룹이라는 거대조직에서 과연
시너지효과를 끌어낼 수 있는지를 먼저 검증할 필요가 있다.

< 정리=양홍모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