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김행굉(52)씨의 "소 그림전"이 23~29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서호(723-1864)에서 열린다.

출품작은 어린시절 싸움소에 대한 기억을 힘찬 붓질과 붉은색 톤의 강렬한
색깔로 사실감 넘치게 형상화한 "소"연작 30여점.

김씨가 그려낸 싸움소들은 이마를 맞대고 사력을 다해 싸우는 모습이 매우
역동적이다.

그러나 작가는 소의 빠른 움직임보다 표정을 더욱 중시하는 점이 특징.

상대를 반드시 쓰러뜨려야 한다는 강렬한 눈빛, 상대의 기세에 눌려 잔뜩
겁에 질린 표정 등을 실감나게 캔버스에 옮겨 소가 가지고 있는 양순한
이미지와는 또다른 면모를 느끼게 한다.

상대방을 끊임없이 공격해야 하고 또 공격을 당해야 하는 싸움소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들의 이기심을 상징적으로 풍자한 작가는 궁극적으로 우주만물의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담아내려 시도했다.

소의 표정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꼬집고 있는
작가는 이와함께 소그림을 통해 자연스럽게 도시인들의 마음의 고향인 농촌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복잡한 도시생활에 찌들어 여유를 잃고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어릴적 추억
을 되살릴수 있는 친근한 소재로서 그 옛날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던 소싸움을
선택한 것.

김씨는 오랫동안 소그림, 그 중에서도 싸움소를 주제로 한 그림만을 고집해
온 작가.

"복잡하고 오묘한 사상이나 철학을 바탕에 깐 그림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감동을 느낄수 있는 그림을 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 백창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