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서울 강남의 소비재수입상들중 세무당국의 집중적인 조사로
파김치가 된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한때 싱가포르 창이공항처럼 물흐르는 듯한 통관을 약속했던 김포공항도
차츰 옛날로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귀국이삿짐 꾸러미를 파헤치는 칼질도 다시 날카로와졌다.

교육부까지 뒤질새라 조기유학생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무분별한 조기유학으로 인한 과다송금을 차단, 국제수지적자를 줄이는데
일조하겠다는 교육부의 뜻은 가상하지만 명색이 OECD회원국이라는 나라의
대응치고는 좀스러워 보인다.

이 정권 초기 세계화구호 아래 조기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말리기는 커녕
오히려 장려하는 듯이 보였던 기억이 새롭다.

소비재수입업자에 대한 세무조사와 이잡듯이 뒤지는 통관, 교육비송금
억제로 과연 국제수지가 얼마나 개선될지 미지수다.

정부당국자들은 "가랑비에 옷 적시는"식으로 외화씀씀이를 줄이는 시책을
전방위에 걸쳐 밀어부쳐야 한다는 확신에 차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시책은 사태의 본질을 외면한 미봉책일 수 있다.

이는 경제정책의 실패와 기업의 경쟁력상실에서 비롯된 국제수지적자를
소비자(국민)에게 전가시키는 관료주의적 발상의 전형이라고 비난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작년에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성인식을 가진 셈이다.

성인클럽에 가입한 이상 어른답게 처신해야지 그렇지않을 경우 주위의
눈총을 받게 마련이다.

요즈음 미국이나 유럽이 우리경제정책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을
생트집으로 치부하기엔 한국경제의 위상이 너무 높아졌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국제성인클럽에 가입, 폼잴 때는좋았지만 이제 회비독촉장이 날라온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어른대접을 받겠다면서도 국제수지상황이 다급해졌다고해서
교육부까지 동원한 것은 촌스럽다.

국제수지상황이 어려울수록 나라의 위신(국가신용도)을 지키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 멕시코의 교훈이다.

우리가 개도국으로 취급당했던 60~70년대나 통할 수 있는 시책들을 이른바
글로벌경제시대에도 답습할 경우 ''되로 받고 말로 주는''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이동우 < 국제1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