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4월의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내고 평생을 임시정부에 헌신한 신암 손병조 선생을 광복회, 독립기념관
등 유관기관과 공동으로 선정했다.

선생은 평북 용천에서 1877년 출생,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우고 30대
중반에 서북지역 독립운동 본거지인 평양신학교에 입학, 민족의 독립의지를
키웠으며 1914년 목사가 되어 향리인 용천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고
중국으로 망명했다.

1921년 안창호 선생의 주선으로 임시정부에 참여한 선생은 이후 임시
의정원 의원과 의장을 지냈으며 임시정부의 가장 어려웠던 시절인 1930년
부터 임정 국무위원으로 선출돼 중경 임시정부에 이르기까지 10년간
임정과 의회를 지켰다.

또 한국독립당을 결성,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으며 애국단체를 규합해
1940년 광복군을 창설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41년 중경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장으로 재선출됐으며 임정의 주요
직책을 역임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1942년 신병으로 서거, 중경 서방동
토교에 안장됐으나 유해를 찾지 못해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가묘로 유택을 마련해 놓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