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천국"

가동 2주일째로 접어든 한보국정조사특위가 그동안 해양수산부 통산부
재경원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등 관련부처와 금융감독기관들로부터 얻어낸
답변을 종합하면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결론이다.

우선 신규사업을 하는데 진입장벽이 없다.

정부는 한보철강의 대규모 제철소 건설을 막을 권한이 없었고 엄청난
자금지원에 대해서도 이래라 저래라 개입할 수 없었다.

기술도입은 통산부 과장전결사항이므로 하고 싶으면 신고서를 제출하기만
하면 된다.

또 금융권은 완전히 자율적으로 움직인다.

금융기관이 특정기업에 수조원을 대출해도 그건 해당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알아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일뿐이다.

"외압이니 하는 것은 납득이 안가는 일"(이수휴 은행감독원장)이다.

재경원이 막강하다는 것도 잘못 알려진 얘기인 듯하다.

일례로 산업은행을 감사할 권한조차 없는게 재경원이다.

재경원은 개별기업에 대해서는 힘을 행사할 수 없다.

재경원이 한보사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작년말부터이고 그것도
어디까지나 금융질서차원이다.

한마디로 기업들은 재경원 눈치를 볼 필요가 전혀 없다.

다만 재경원은 이제 의원들이 자꾸 책임을 거론하니 그동안의 자율화
정책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고민이다.

정부는 한보철강이 휘청거린다는 소리도 작년말에 처음 들었고 그 전에는
거기에 관심을 가질 이유도, 챙겨볼 생각도 못했다.

한보가 부도처리된 것은 우리경제가 경제논리로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이다.

아무튼 이런 "기업천국" "작은 정부가 구현된 나라"에서 우리 기업인들은
왜 그토록 자주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통사정을 할까.

또 왜 현대제철소는 안됐고 삼성은 승용차사업진출을 위한 기술도입에
정부 눈치를 살펴야 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정부는 그렇게 하는 일이 줄었다면서 왜 과거보다 비대한
조직을 유지하고 있을까.

답답한 것은 국회의원들만이 아닌 듯하다.

허귀식 < 정치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