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상 < 삼성문화재단 상무 >

지난주 우연한 일로 혜화동에 있는 조병화선생의 작업실(글방)을 찾았다가
뜻밖에 두권의 소중한 책을 얻었다.

하나는 시와 그림으로 엮은 화사한 시집이고, 또 하나는 ''그리다 만
초상화''란 제목의 시와 산문집이었다.

유려한 필치의 그림과 담백한 시편들이 한데 어우러져 화려하면서도
짜임새있게 꾸며진 화집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특히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시와 산문집이었다.

''그리다 만 초상화''는 ''그 문학과 인생만들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성춘복 시인이 그동안 써온 조시인의 시와 산문을 추리고, 그 뒷부분에
여러명의 문단후배와 제자들이 ''인간 조병화''에 초점을 맞춰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었는데 제1부는 ''시의 뿌리''란 소제목으로 조시인이
평소 기록했던 시에 관한 잠언과 단상 1백53편을, 제2부는 ''시인의 길''
''시인의 나라'' ''시인의 사랑'' ''시인의 철학'' 등의 이름으로 그의 대표적
시편들을, 제3부는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란 제목으로 그가 살아온 족적을
엿볼 수 있는 여러편의 산문을 실었다.

그리고 제4부는 성춘복.이형기.이이도씨 등 12명의 시인들이 ''그 사람,
그 문학''이란 주제로 조시인의 인간과 문학세계를 따뜻하게 조명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별히 감동을 느끼게 되는 대목은 그의 어머니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이다.

그는 ''위대한 고향, 어머니''라는 글에서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목사님의
인도로 기독교의 하늘로, 천주교를 믿는 사람은 신부님의 안내로 천주의
하늘로, 불교를 믿는 사람은 스님의 인도로 불교의 하늘로 고향을
찾아가지만 나같이 어머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의 안내를 받아 어머님이 계신
그 고향으로 찾아갈 것인가''라고 묻고는 "내 영혼의 고향은 어머님이며,
내가 찾아가야 할 고향은 바로 어머님"이라고 쓰고 있다.

그에게 있어 어머니는 시이며, 철학이며, 종교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