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에 이어 삼미마저 쓰러지자 부도공포가 급속히 확산되고 자금시장이
경색돼 흑자도산 사태까지 우려되고 있다.

이에따라 지난 21일 열린 국가경쟁력강화 민간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 5단체는 정부에 자금시장안정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특히 가뜩이나 수출부진과 경기침체로 경영이 어려운 중소기업들에
한보부도이후의 자금시장경색은 치명타가 되고 있다.

담보가 있어도 대출을 얻기 힘든 판에 신용대출은 꿈도 못꿀 형편이며
어음할인도 거의 전면 중단되다시피 됐다.

심지어는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던 거래기업의 당좌이용한도까지
은행들이 일방적으로 축소해버려 기업경영이 위태로워진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이러니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하루하루 연명에 급급해 이달들어서만
전국의 부도업체수가 1천개사를 넘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은행창구가 얼어붙어 자금중개기능이 마비되고 시중금리가 급등하는
이같은 신용핍박(credit crunch)현상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할 경우
금융공황사태로까지 번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따라서 경제계가 입을 모아 정부에 자금시장안정 대책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정책당국은 우선 한보와 삼미의 부도에 따른 뒤처리를 서둘러 연쇄부도
가능성에 대한 불안심리를 진정시켜야 하겠다.

하청업체나 납품기업의 진성어음할인을 보장해주고 밀린 임금이나
자재대금을 신속하게 결제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다음으로 중소기업들의 생산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신용보증한도를 늘리고
적격업체에 대한 특례보증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물가 금리 환율을 안정시키고 통화관리를 신축적으로 하며
필요하다면 금융기관에 대한 자금지원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일선 은행창구에서 신용경색이 발생하지
않도록 금융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잇따른 부도사태로 은행경영이 어려워진건 사실이지만 기존 거래선의
대출을 중단해야 할 정도로 시중유동성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그런데도 만약의 경우에 책임지기 싫다며 멀쩡한 기업의 돈줄을
끊어버리는 것은 명백한 금융기관의 횡포다.

최근 정책당국에서도 빅뱅식 금융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평소에는 고객위에 군림하다가 급하면 고객을 외면하는 금융기관은
도태돼야 한다.

이점에서 세계 방수포장시장을 석권한 교하산업이라는 회사가 지난 18일
부도위기에 몰리자 제2금융권 26개사가 공동으로 자금지원에 나선 사실은
금융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시장자율에 맡긴다는 것이 손놓고 복지부동(복지부동)하라는 뜻은
아니다.

부실기업은 마땅히 도태돼야 하겠지만 자금시장의 심리적인 위축때문에
선의의 기업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정부와 은행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