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쇠라면 흔히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태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떠올린다.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친구 바사니오로부터 구혼 여비를 마련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자기 소유의 배를 담보로 샤일록에게서 돈을 빌린다.

안토니오가 샤일록에게 돈을 갚을 수 없을 때에는 자신의 살 1파운드를
제공한다는 증서를 써준다.

바사니오는 구혼에 성공하나 안토니오는 출항한 배가 돌아오지 않아
생명을 잃을 위기에 몰린다.

그러나 바사니오의 약혼자 포샤가 남장을 하고 베니스법정의 재판관이
되어 "살은 주되 피를 흘려서는 안된다"고 선언함으로써 샤일록은 패소하여
재산을 몰수당하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할 것을 명령받는다.

이 희극에 묘사된 샤일록은 인간미라곤 찾아볼 수 없는 혹독한 인간의
극치다.

그러면서도 독자들에게는 샤일록으로부터 비극적인 인간의 면모를
감지하게 만든다.

현실세계에서도 샤일록의 행태에는 못미치지만 지독한 구두쇠로 일생을
마친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영국의 유명한 조각가 조셉 놀켄스(1737~1823)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재산 늘리기에 골몰한 나머지 거지같은 삶을 살았다.

다른 조각가들이 버린 대리석조각을 주워다가 작품을 만들었다.

초대받은 만찬식탁에서 조미료병을 훔치고 남의 담배를 실례하기 일쑤였다.

집에서도 손님이 와야만 불을 켰다.

그가 죽은 뒤의 재산은 당시로선 엄청남 100만달러나 되었다.

반면 청빈하게 살면서 한푼두푼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세상을 떠난
존경스러운 구두쇠들도 적지 않다.

한국에서도 근년에 삯바느질 보따리장수 식당업 여관업 등으로 평생동안
어렵게 번 전재산을 장학금 또는 소년소녀가장돕기기금으로 내놓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세상에 경종을 울린바 있다.

미국에서도 요즘 구두쇠 삶으로 저축한 거액의 재산을 사회단체에 투척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화제의 초점이 되고 있다.

부정한 축재로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온 한국의 권력층은 구두쇠들의
선행에서 돈의 진가가 무엇인가를 한번쯤 되씹어 보아야 될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