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알고보면 별 것도 아닌 남자인지 몰라.

그러나 저, 그 백영이 오빠는 무엇이랄까, 이 세상에는 그렇게 청결한
얼굴이 없어.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미남이우"

딸아이의 입에서 백영이의 칭찬이 쏟아질수록 공박사는 백영은 지영웅이라는
강한 인상을 지울수 없게 된다.

그런 아이들은 이름도 몇개씩이나 되고 여러가지로 변장 연출에 능하다.

그녀는 점점 미아와 길게 대화를 해서 그 수수께끼를 풀어내려고
다부져진다.

미아의 흥미에 관심이 지대한 어머니가 되어 따뜻하게 웃으면서 공박사는
진지하게 묻는다.

"학원에 그 미남친구가 나올때, 같이 차라도 마셔 보았냐?"

"응. 꼭 한번 우리들 여럿이서 그 애를 둘러싸고 피자집으로 몰고 들어갔어.

안 들어가려고 빼는게, 마치 색시같이 두려워해. 여자를..."

그건 연출이었겠지.

공박사는 그렇게 지영웅을 비난하면서 의혹에 가득찬 시선으로 딸을 노려
본다.

"엄마, 왜 그렇게 나를 두렵게 해?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예민한 그 애는 공박사의 마음속에 들어왔다가 나간것 같이 나무란다.

"험악한 얼굴하면 입 자크 닫는다"

그러자 공박사가 의도적으로 하하하하 하고 크게 웃는다.

사실 그녀는 웃을 기분이 아니다.

차라리 정신 좀 차리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너 그놈이 어떤 개같은 인간인데, 이 바보야, 속지 말라구.

제발 나의 공주님...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아주 웃음을 함빡 물고, "계속해서 엘비스 프레슬리
예찬을 늘어놓아 보시지.

얼마든지 들어줄수 있으니까"

그녀는 거짓말을 하면서 다 큰 딸을 바라본다.

재미있어 죽겠다는 얼굴을 억지로 연기하면서.

"무엇을 하는 집 아이같데?"

"엄마, 내 말을 무엇으로 들었어?

그 순진무구한 슬픈 눈을 한 남자와 콜라 한잔, 피자 한조각을 다섯명의
여자들과 먹었대두.

그러니 그대의 아바마마께서는 무엇을 하는고?

낙랑공주처럼 호동왕자의 신상명세를 물을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고.

그런데서 너희 아빠는 무엇하는 중년의 멋쟁이십니까?

할 수는 없잖우?

그 오빠는 휠라의 티에다가, 자니베르사체의 재킷에다가, 구치 구두에다가,
손에는 파텍인지 뭔지 상표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최고로 멋진 디자인의
시계를 차고 있었어.

그러니 잘 사는집 도련님인 것만은 확실한데, 피자를 한조각 다 먹더니
제가 그 돈을 내고 줄행랑을 친 거야.

너무 멋있지?

다섯명의 여자들은 완전히 닭 쫓던 개 되고.

그리고는 두세번 학원에 나타나더니 유학을 갔는지 안 나타나는 거야.

그러니까 모두 오빠에게 피자를 갚아주기 위해서도 찾게 된 거지.

낸시 선생까지 뾰옹 가 가지고, 우리 앞에서까지 서양여자다운 솔직성을
가지고 그 도망자를 찾는 거지"

공박사는 이제 그 남자가 지영웅이라는 자신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