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찬표 < 서강대 교수 / 경영학 >

최근들어 부도가난 한보철강을 비롯, 96년이후 삼익악기, 우성건설, 건영
등 많은 대기업이 무너졌다.

이런 사건들이 생길 때마다 일반 국민이나 정치권의 관심은 주로 대출
비리나 외압의 유무에 집중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기업집단의 부도문제를 기업재무학의
관점에서 원인분석하고, 이의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적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기업부도는 부채를 쓰기 때문에 생긴다.

만일 자기자본만을 쓴다면 부도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업이 부채를 적절하게 쓰면 수익이 증폭되는 플러스효과가 있다.

그것은 차입이자의 법인세 절감혜택 때문이다.

반면에 과도한 부채이용은 부도위험증대의 마이너스효과가 있다.

따라서 기업은 이 플러스효과와 마이너스효과를 고려하여 적절한 부채이용
금액을 결정해야 한다.

실제로 미국이나 일본 등의 세계화된 일류기업들은 부채의 마이너스효과를
두려워하여 절대로 과잉부채를 쓰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기업집단들은 이와는 아주 대조적이다.

재벌의 순위는 부채이용의 크기에 비례할 정도로 부채를 많이 쓰고 있다.

이의 근본적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대기업의 소유경영자는 금융권부채를 많이 써서 기업을 대규모화
시키면 결국 정부가 울며 겨자먹는 식으로 계속 대출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부채를 적게 쓰니까 부도가 나는 것이지 엄청나게 많이 쓰면 오히려
부도염려는 없다는 생각이다.

한보는 부채가 5조원밖에 안되어 부도가 났다고 생각하지 소유경영자의
무리하고 방만한 경영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잘못된 사고를 소유경영자가 갖게 된 것은 정부가 지금까지
중소기업의 부도는 방치한채 대기업의 부도는 가급적 막아주었던 소위
관치금융의 전례때문이다.

둘째로, 부채는 소유경영자로 하여금 고수익 추구를 가능케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채가 많을수록 고위험-고수익 사업을 하고 싶은 유혹이 생기게
되고, 그 고수익가운데 채권자 몫은 일정해서 그 대부분이 소유경영자한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기업들이 과도한 부채를 쓰지 않는 것도 부채의
부도유발 위험 때문이다.

세째로, 기업의 자금조달결정을 하는데 있어 소유경영자가 기업가치의
극대화보다는 경영권이 확보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채의 경우에는 아무리 그 규모가 클지라도 경영권 위협은 없다.

네째로, 대규모화된 대기업의 소유경영자가 누리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파워(Power)가 우리 사회에서 막강하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한국 대기업집단의 부채선호경향에 대하여 이번의 한보사태는
재무학적으로는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과잉부채 기업은 몇대재벌에 속할지라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부도가
날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시장경쟁체제하에서 한보철강과 같은 기업은 금융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부도가 나야 한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부도를 내는 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대기업집단의 부도는 그 파장이 크기 때문에 이를 자생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제반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대기업집단이 재무구조를 개선하도록 제도면에서 근원적
해결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아울러 부채를 줄이려는 대기업집단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다.

그래야만 국제경쟁력도 제고될 수 있다.

첫째는 소유경영자의 올바른 경영자세확립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도덕적 위해가 없는 사명감있는 경영인이
되어야 한다.

정치권에 줄대어 부채로 무모하게 사업을 확장하려는 허황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 자세의 확립은 물론 제도개선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며 국민의식
수준이나 전반적 사회분위기속에서 각성되어야 할 문제이다.

둘째는 관치금융의 근절이다.

미운 아이에게는 떡을 주고, 예쁜 아이에게는 매를 때려준다는 옛말이
있듯이 정부가 진정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키우려면 절대로 특정기업을 어떤
형태로든 봐주어선 안된다.

이것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행되어야 한다.

망할 수 있는 기업은 망하게 놔두는 것이 결국 그 기업을 튼튼히 키우는
것이 된다.

셋째는 기업경영에 대해 감시감독할 수 있도록 소액주주들의 권한이
강화되어야 한다.

공신력있는 정보제공 등 기업경영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제반조치들이
강구되어야 한다.

또한 주주친화적 제도개선이 되어야 한다.

넷째는 기업집단의 소유구조의 개선이다.

특히 계열사 출자와 상호지급보증을 통한 계열사간의 연계성을 낮추도록
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어느 한 기업의 부도에 따른 연쇄적 부도를 막을 수 있고 사회적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문제는 일차적으로 그 기업의 미시적 문제이다.

그러나 기업의 경쟁력이 있어야 경제성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또한 거시적 문제이기도 하다.

이번의 한보사태에서 비리관련인사들은 엄중문책되어야 한다.

그리고 코렉스공법의 타당성도 다시 따져보아 추가투자여부도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현 어려운 경제상황하에서 기업집단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근본적 대책을 어떻게 슬기롭게 마련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또 다른 제2의 한보사태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정치적 논리가 아닌 경제논리의 측면에서 근원적으로
해결하도록 해법을 강구해야 한다.

이번의 한보사태가 좋은 계기가 되기를 염원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