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 들어가 앉자, 미아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만하면 아버지없는 아이들일망정 제대로 정서 교육을 잘 한 것인가?

그녀는 늘 자기 자신에게 그러한 질문을 많이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역할을 두루 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그것은 언제나
그녀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무거운 짐이며 의무였다.

"엄마, 내가 아까 말한 그 오빠 말이우. 너무 너무 잘 생겼다.

자로 재놓은 미남이야. 하느님은 확실히 공평하지 못해. 나에게 편지
자주 주는 그 애 문수말이야.

그 애는 정말 무꼬랑지같이 못 나고 싱거워서 미안한데, 이 남자는 너무
잘 난거야.

그런데 왜 그렇게 여자가 또 만나자는데 싫어하고 거절할까? 애인이
있나부지?"

"그런가부지"

요새는 잘 생긴 남자 하면 공박사는 얼른 지영웅이 떠오른다.

무슨 강박관념처럼 지체없이 미남 어쩌구 하면 지영웅을 떠올리는 것은
무슨 일일까?

"이름이 뭔데?"

"백영이야. 외자 이름이어서 쉽게 외웠어. 그런데 그 오빠는 너무
이상해.

절대로 커피도 같이 잘 안 마시려고 하고, 자꾸 도망만 다닌다구.

그러다가 사라진 거야. 우리 낸시 선생님도 영이오빠를 아주 못 잊어
했어.

왜 안 나오냐구, 몇번이나 누구 아는 사람 있냐구 했어.

그런데 나는 오늘 그 수수께끼의 미남 오빠를 운좋게도 요 앞 건널목에서
만난 거야"

"무슨 차를 타고 다니던?"

"차 안 탔어. 당구장에서 나오는것 같았어. 상당히 우울한 미남이
아니고 그냥 아폴로같이 생겼어. 왜 있지, 한창 싱싱할 때의 엘비스
프레슬리 같아"

공박사는 갑자기 엘비스 프레슬리라는데 지영웅이 다시 떠오른다.

"키도 크고, 머리숱도 많고, 눈썹이 시커멓고, 눈이 크지? 서양아이
같지? 한국애 치고는 너무 복숭아빛이고 수염은 많고"

"맞아. 엄마도 그 오빠를 알우? 하지만 그 오빠는 병원에나 드나들 그런
선병질적인 남자가 아니야"

"직업이 뭐라데?"

"직업은 그냥 재수 삼수생이라고 했어. 어디 숱많고 키큰 젊은이가
하나둘이우?"

"나이는 몇살쯤 되어 보이디?"

"아유 엄마, 왜 그래? 무슨 살인범 추적하는것 같수"

"내 오버센스 인가부다. 왜 나는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너를 나로부터
훔쳐갈 것만 같은 생각을 하니? 미안하다. 내가 너무 이상하지?"

"엄마야말로 노이로제같애. 과대망상인가? 노이로제라는 말은
구식이라며? 정신의학에도 유행이 있나봐. 하긴 모든 개념이나 학문에
유행은 있을것 같아"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