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네바=김수찬 기자 ]

"틈새시장을 잡아라"

지난 4일부터 스위스 제네바 팔렉스포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제 67회
제네바모터쇼의 화두는 역시 "틈새시장".

2년전부터 거세게 불기 시작한 "MPV(다목적차량)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요즘 모터쇼에서는 티뷰론과 같은 유형의 쿠페형승용차나
흔히 오픈카로 불리는 컨버터블형의 출품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또 거의 모든 세단에는 왜건형 모델이 반드시 동반 출품되고 있다.

자동차시장이 "니치(Niche 틈새) 제품의 혁명기"를 맞고 있다고나 할까.

쿠페나 컨버터블은 MPV의 본격적인 등장과 더불어 한동안 모터쇼의 양념
으로 전락했었다.

그런 제품들이 이제 당당히 제자리를 되찾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SLK, 포르셰 박스터, 오펠 티그라, 르노 메간-세닉 등이
대표적인 차종이다.

세단에서 MPV로 변화하는 시장 재편과정에서 MPV의 최대장점, 그러니까
"가족 단위의 생활"과 별관계가 없는 "독립형 신세대"들이 그 고객이다.

그렇다고 왜건이나 여타 MPV의 성장이 중단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물론 이들도 틈새시장의 주역이다.

왜건의 경우 니치제품이었지만 이제는 주력상품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느낌이다.

활동성이 높고 중고차값이 유리하다는 것도 왜건형과 MPV가 득세하고
있는 이유지만 우선적으로 생활패턴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변화의
배경이다.

미니밴을 넘어 새로운 유형도 선보이고 있다.

르노가 내놓은 판게아는 덩치 큰 미니밴에 아예 트레일러가 또하나 붙어
있는 모습이다.

가족들의 캠핑용으로도 쓸 수 있지만 이동연구소의 기능도 할 수 있는
다목적용이다.

제네바모터쇼의 두번째 특징은 "풀 라인 업 모델" 체제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

업체별 생산차종 차별화 시대에서 벗어나 모든 세그먼트에서 "전방위
무차별 경쟁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대표적이다.

벤츠의 라인업은 C(소형) E(중형) S(대형)클라스에 국한됐었다.

그러나 이번에 C클라스보다 작은 A클라스를 처음 선보였으며, 그것보다
더 작은 스마트카도 양산을 눈앞에 두고 있다.

게다가 SUV(스포츠목적 자동차)인 M클라스와 본격 MPV인 비아노도 라인업에
새롭게 추가되고 있다.

폴크스바겐그룹은 초소형차인 피코와 아로사(스페인 자회사 세아트 제품),
대형차인 파사트V8을 내놓았고, 피아트는 준중형급인 시에나를 선보였다.

일본이나 한국업체들도 쿠페나 컨버터블 로드스터를 새롭게 출품했다.

각 업체 모두 손대지 않던 부분이다.

세번째 특징은 복고바람이다.

80년대부터 이어져온 라운드형 외관이 점차 사라지고 직선이 등장하고
있다.

또 과거 히트쳤던 제품의 디자인을 리바이벌시켜 신차의 컨셉트로 적용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의 딱정벌레차(비틀)의 후신인 뉴비틀, 벤츠의 SLK, 포르셰의
박스터가 그렇다.

신기술 연구와 첨단기능의 신차개발 및 실용화는 여전하다.

3리터의 연료로 1백km를 달린다는 "3리터 카" 개발, 초경량 알루미늄
보디 적용, 대체연료 차량의 실용화 추진, 안전을 위한 각종 설비는 이번
모터쇼에서도 볼만한 구경거리다.

현대자동차 수출계획실장인 이형근이사는 "풀 라인 업 체제는 물론 니치
제품까지 빠짐없이 확보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제네바모터쇼가 주는
교훈"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