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시도를 차려입은 지긋한 나이의 노신사가 손님을 맞는다.

몸에 밴 서비스정신과 오랜 세월 익힌 경험을 바탕으로 손님의 취향은
물론 분위기에 어울릴만한 음료및 식사를 권한다.

화려한 실내장식과 감미로운 음료, 진기한 음식으로 손님을 유혹하는 고급
레스토랑의 지배인들.

그러나 리츠칼튼호텔이 자랑하는 홍옥순(26)는 여느 지배인과는 다르다.

우선 나이부터 파격적이다.

스물여섯의 꽃다운 아가씨이다.

호텔관련 학과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경력도 그리 길지 않다.

해외장기연수는 말할 것도 없고 흔한 배낭여행도 한번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리츠칼튼호텔 9개 업장 가운데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로비라운지
의 지배인으로 일하고 있다.

홍씨가 리츠칼튼에 입사한지 한달 반만에 지배인이 될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따뜻한 마음과 서비스정신 때문이다.

우아한 미소로 모든 이들을 반길 뿐 아니라 한두번 찾은 손님일지라도
취향을 기억해 내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점이 매력이다.

욕구를 미리 파악할 뿐 아니라 편안한 분위기를 제공하려고 애쓰고 있어
1년이 지나서 투숙한 외국손님들조차 홍지배인을 찾는다.

"어쩌다 들른 고객이라도 이름을 기억해 주고 좋아하는 테이블에 안내해
선호하는 음료를 내놓으면 그렇게 좋아할 수 없다"고 홍옥순씨는 말한다.

그러나보니 손님들과 대화도 자연스럽고 여러가지 비밀조차 알게 된다고.

외교관이 꿈이었던 그녀가 민간외교사절을 택한 이유는 다양한 사람들을
접해볼수 있다는 즐거움과 호텔에서 풍기는 화려함과 재미등이다.

거물 정치인과 인기 연예인 기업인등을 만나보면 여러가지 세계를 간접적
으로 느끼게 된다고.

가끔은 스캔들성 비밀도 알게 되지만 철저힌 비밀유지로 홍씨에 대한
고객의 신뢰도 또한 높다.

홍씨는 발바닥이 부르틀 정도로 뛰어다닌다.

항상 다리는 퉁퉁 부어있고 발에는 티눈이 박혀 있다.

하루 10시간 가운데 앉아 있는 시간이라곤 식사시간과 회의시간.

자기보다 나이많은 부하직원들에게도 깍뜻이 예의를 갖춘다.

늦게 끝나다보니 자유시간도 많지 않다.

겉으로보는 화려함과 달리 내면적인 어려움도 무시할수 없다는 얘기.

하지만 홍씨는 "재미있기 때문에" 일에 파묻혀 지낸다.

그렇다고 일밖에 모르는 것은 아니다.

신세대답게 즐길줄도 안다.

분위기 좋은 곳을 찾아 레몬소주나 스카치를 즐기는 낭만은 힘든 일을
이겨 나가는 그녀만의 지혜이다.

"포도주라면 ''카보네 사비옹 쿠베송 나파넬리'' 92년산이 최고지요"

홍씨는 텁텁한 레드와인의 향과 맛에 흠뻑 빠진 것도 호텔일을 하면서
터득해 냈다고 설명한다.

홍씨는 리츠칼튼호텔의 ''붉은 구술'' 같은 존재이다.

<정태웅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