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가 시행 3년 6개월여만에 수술대에 오르게 됐다.

새 경제팀장인 강경식 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과 김인호 청와대경제수석이
금융실명제를 경제난 초래의 종범으로 낙인찍고 첫 임무로 대대적인 보완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같은 방향 설정에는 무엇보다도 금융실명제가 결과적으로 금융기능을
위축시키고 경제정책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켰다는 판단에서 시작한다.

지난해부터 신한국당의 일부 의원들은 <>지하자금 양성화 저해 <>자금난
심화 <>과소비 유도 <>사채시장 건재등을 이유로 금융실명제 보완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김종필 자민련총재도 지난 2월 국회에서 <>실명거래에 대한 세무조사및
자금출저조사등 제재 중단 <>3천만원이상 금융거래의 국세청 통보 폐지
<>장기산업채권 발행 <>종합금융과세 유예등 보완책을 제시하는등
금융실명제 수정에는 여야가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한보사태를 계기로 금융실명제가 결국 비자금 조성및 뇌물수수를
막지 못했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재경원도 이같은 흐름에 밀려 상속.증여세 면세상품을 신설하고 장기저축
상품세율을 인하한바 있다.

강부총리는 과거 자신이 주장했던 금융실명제가 당초 도입목적이었던
''떳떳하지 못한 자금의 양성화''는 이루지 못한채 결과적으로 ''기득권세력에
대한 응징'' 차원으로 변질됐다는 불만을 품고 있는 듯 하다.

지난 82년 당시 강재무부장관은 6.28조치를 통해 예금및 대출금리를 대폭
내리는 사전정지작업을 한뒤 7.3 조치를 통해 금융실명제의 골격을 발표
했다.

<>83년 1월부터 금융실명제 실시 <>전환기간(83년 6월말)이후 전환자금에
대해 원본의 5% 특별과징금 징수 또는 이자의 50% 포기 <>전환기간내
실명화시 3천만원(미성년자는 7백만원) 한도 초과해도 은행주 매입, 상호
신용금고및 단자 출자, 장기주택채권매입시 자금조사배제등이 골자다.

이에비해 지난 93년 8월 대통령긴급명령형태로 실시된 금융실명제도는
''채찍''(과징금부과)만 휘둘렀지 "당근"(자금양성화 유인 특혜)은 없었다는
점을 문제로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 <>실명전환기간이후 전환한 금융자산에 대한 과징금이 최고
(98년 8월이후) 60%인데다 <>자금출저조사면제 상한선을 5천만원으로 한정
하는등 지하자금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배려가 미흡했다는 시각이다.

문제는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바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실명제가 문민정부의 자칭 최대 업적인 만큼 이를 손질하겠다는데는 적어도
사전에 대통령에게 양해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강부총리는 구체적인 내용에는 언급을 삼가고 있지만 그간의 언행및 저서
에서 볼때 그핵심은 자신이 만든 금융실명법률의 정신을 되살리는 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금조성과정에 관계없이 적절한 과징금(도강세)만 내고 사회간접자본투자에
공공성이 짙은 분야에 투자한다면 일체 "과거를 묻지 않겠다"는 식이 될 수
있다.

일각에선 <>비실명자산에 대한 과징금율 인하 <>일정한 조건을 충족
시키는 실명전환자에 대한 자금출저 조사 면제등이 논의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새 경제팀의 발상은 대선을 앞두고 기득권측의 이익만을
중시하며 사실상 소급입법형태를 취함으로써 종전 규정을 지킨 사람만
손해를 보게 했다는 비난을 들을 우려가 크다.

개혁의지 퇴색이라는 평을 들을건 두말할 것도 없다.

더욱이 지난해 9월 현재 실명예금의 미확인율은 0.9%뿐이고 남아 있는
비실명예금은 3백58억원(1.25%)에 불과해 보완론 자체에 대한 이의가
있을수도 있다.

강부총리가 개혁의 명분을 살리면서 불편해소라는 실리를 얼마나 챙길지
두고 볼 일이다.

<최승욱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