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남선녀의 화합을 재촉하는 춘삼월이다.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인륜대사를 준비하고 싶은게 대부분 선남선녀들의
마음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선 예식장 예약에서부터 만만치 않다.

식장을 잡아도 신부화장 사진 비디오쵤영 비용등을 놓고 식장측과 승강이를
하다 보면 설레임보다는 지겨움이 앞서기 십상이다.

혼수품 장만이나 신혼여행 준비도 마찬가지다.

번거로운 결혼준비를 대신해주는 결혼대행업체들이 잇달아 선을 보이고
있다.

결혼준비 대행업체들은 결혼의 정형화와 결혼을 앞둔 신세대 특유의 편리성
추구성향 등과 맞물려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현재 전국에 1백여개 업체가 성업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을 정도다.

결혼준비 대행업체들은 전화한통화면 예식장에서 신혼여행알선까지 모든
결혼절차를 대행해 준다.

예식장 사진관 식당 미용실 여행사 혼수전문점등 결혼관련업체를 협력업체
로 끼고 있어 가격도 저렴하다.

더러는 궁합까지 대신 봐주는 업체도 있다.

다음은 오는 30일 결혼하는 김철민씨(30)와 정선화씨(26)의 사례.

예비신랑 김씨와 예비신부 정씨는 둘다 샐러리맨이다.

둘다 직장에 다지기 때문에 짬을 내기 어려운데 목록을 작성하다 보니
준비해야 할것이 1백여가지가 넘었다.

알음알음으로 혼수준비를 마치고 나니 녹초가 됐다.

김씨가 다니던 교회를 예식장으로 예약하고 피로연장소도 소개받았으나
정작 결혼식이 문제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것이 결혼준비 대행업체.

친구로부터 소개받은 웨딩포인트라는 결혼준비 대행사를 방문, 1시간정도
상담을 한 것으로 골치를 썩히던 결혼준비가 끝났다.

이벤트회사가 작성해준 목록에는 신부드레스와 턱시도, 신부화장및 신랑
화장, 부케, 비디오촬영, 원판및 스넵사진, 야외촬영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들 모두를 합친 가격이 1백55만원.

김씨와 정씨가 잡은 예산의 절반정도였다.

더구나 정씨가 여기저기 수소문끝에 알아뒀던 유명 드레숍과 미용실이 끼여
있어 마음이 놓였다.

뜻밖에 예산절감으로 기분이 좋아진 예비신랑 김씨.

턱시도 대신 10만원을 더 얹어 연미복을 선택하고 야외촬영에도 10만원을
더 투자하는등 호기를 부렸다.

또 폐백음식을 마련하고 의상을 빌리는데 15만원이 들었다.

그러나 교회를 식장으로 이용하는 바람에 예상밖의 추가비용이 발생했다.

식장에 탄상 꽃길을 생화로 꾸미는데 26만원,

주단 세탁비로 3만원을 지불한 것이다.

이 밖에 청첩장및 봉투인쇄비를 포함해 7만원을 썼고 장갑 사인펜 초
방명록 축지등의 소모품비용으로 2만원을 지불했다.

김씨와 정씨가 치른 총비용은 2백9만원.

이들은 당초 산정했던 비용과 얼추 맞아 떨어진데다 무엇보다 발품이 거의
들지 않아 만족하고 있다.

웨딩포인트 천성두사장은 "그동안 예식장이 강요하는 물건을 고스란히
이용해야 하는 것이 우리 결혼문화의 주소였다"며 "결혼준비 대행사의 출현
으로 예식장도 새로운 경쟁시대를 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요즈음은 하루에도 20쌍이상이 결혼준비를 의뢰해 오고 있다"며
"올봄 결혼식을 올릴 것으로 추정되는 10만여쌍중 5% 가량은 결혼준비
대행업체를 이용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통혼례 대행업체도 있다.

천편일률적인 결혼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통혼례를 선택하는 신세대
예비부부들이 늘고 있다.

전통혼례 대행사인 "우리옛멋"의 경우 대례상과 음식일체, 소례상,
무대셋팅, 의상, 혼례소모품및 인력을 제공하는 비용이 60만원정도.

사물놀이와 전통악사초청를 초청하기 위해서는 각각 35만원의 추가비용이
든다.

생명보험회사등도 결혼대행업체와의 업무를 제휴, 계약자및 직계가족을
대상으로 결혼관련서비스를 펼친다.

대한생명은 대맥웨딩(080-580-5800), 동아생명은 토탈웨딩(254-1274),
흥국생명은 결혼이야기(736-1100)등의 이벤트대행사와 연계, 예식장알선
에서부터 혼수마련 신혼여행까지 결혼서비스 일체를 제공하고 있다.

사회 일각에서는 이들 대행업체들의 출현으로 결혼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
하고 하나의 통과의례로 변질시키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들 결혼준비 대행업체들이 현대의 일상에 걸맞는 결혼문화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힘들것 같다.

<손성태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