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변화를 가장 잘 실감할 수 있는 계절은 다름아닌 봄이다.

말라 죽은 줄만 알았던 나뭇가지, 딱딱하게 응고된 땅을 비집고
파릇파릇한 생명이 움트는 것을 보노라면 아무리 무심한 사람이라도 한번쯤
경이로운 신비감에 젖게 된다.

그 느낌이란 겨우내 어둡고 찬 곳에서 묵묵히 기다리고 준비한 보람이며
희망이며 또한 가상한 용기이다.

봄은 세상을 한손에 움켜 쥘만한 기상을 젊은이들에게 주고, 중년에게는
지난 일상을 반성하고 다시 시작해도 될 것이라는 기대를, 노인에게는
자연은 순환된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음미하게 해준다.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질박하면서도 더 강인한 끈기를 자랑으로
지닐 수 있었던 것도 혹독한 겨울을 감내하면 멀지않아 찬란한 봄의 향연이
온다는 것을 가까이에서 보아왔기 때문이리라.

적막하던 대지가 갑자기 부산하고 생기속에서 바빠진다.

어찌 봄이 주는 의미가 이 뿐이겠는가.

세우와 미풍으로 꽃을 피우되 내가 왔노라고 자랑하지 않으니 "도이불언
하자성혜"라는 말처럼 세인들의 사랑을 받는다.

지금 저만치 봄은 오고 있다.

요즘처럼 힘겨운 사회에 부대끼는 사람들에게 올해의 봄은 유난히 반가운
존재가 될 것이다.

자연이 주는 것이 무대가의 선물은 아니다.

봄에는 땀흘려 열심히 밭을 갈고 산에 나무를 심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농부가 제 밭을 갈며 호들갑을 떨지 않듯이 일부러 시끄러울
필요는 없다.

저 봄은 벌써 우리에게 거칠고 우울했던 그동안의 유랑생활을 완전히
청산하는 정착지에 이르렀다는 각오로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옹골찬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