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체교섭 실태와 과제 ]

김태기 < 단국대 교수 / 경제학 >


단체교섭이 임금 및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핵심역할을 수행하게 되면서
근로자들의 경제.사회적 지위는 많이 상승했다.

노사 관계도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일방적 관계에서 쌍방적
관계로 바뀌어 왔다.

그러나 교섭관행은 아직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기업별 개별교섭의 취약성을 보완하지 못해 임금이 경쟁적으로 상승해 온게
대표적인 예다.

단체교섭을 통해 결정된 임금이 노동조합이 조직돼 있지 않은 중소사업장의
임금인상에 많은 영향을 미쳐 경제 전체로 볼 때 임금은 경쟁적으로 상승해
왔다.

교섭관행의 이런 문제점은 교섭비용을 가중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인사.경영사항을 교섭대상에 포함시킬 것인지의 문제, 교섭권과 체결권의
분리 여부, 파업기간 임금 지급 문제 등에 대해 각 사업장 노사가 대립하고
있다.

또 임금협약과 단체협약이 분리돼 있고 각각의 유효기간이 1년과 2년을
넘지 못하게 돼있는 것도 문제다.

반면 노사협의회는 법적으로 의무화되고 최소한 매분기마다 개최하도록
돼 있지만 취지와 달리 단체교섭의 연장선에서 운영되고 있다.

자연히 교섭비용이 상승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노동법은 미국의 노동법처럼 단체교섭형 노사관계를 염두에 두고
있다.

유럽 국가들에 비해 노사가 단체교섭에서 지켜야할 룰을 구체화시키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실효성이 낮다.

우리나라의 노동법과 비슷한 일본의 경우 단체교섭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법보다는 관행 개발에서 찾아왔다.

이런 단체교섭제도의 각종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여러갈래의 논의와 노력이
진행돼 왔다.

단체교섭을 기업별 개별교섭에서 업종이나 지역단위의 공동교섭으로 전환
하자는 주장이 노동계를 중심으로 제기돼 왔고 전국 차원의 노사연합체끼리
임금인상의 가이드라인을 정하려는 노력도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속에서
진행돼 왔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시장경쟁이 격화되고 기술의 생성 소멸주기가 단축되면서 단체교섭의 성격
부터 구조까지 바뀌지 않을 수 없다.

생산에서의 유연성,품질개선 등이 기업의 경영성과에 있어 핵심과제가 되고
근로자의 의식도 다양화됨에 따라 단체교섭의 분권화와 교섭과정의
탈규제화가 추진되고 있다.

공동교섭을 하는 국가에서는 업종 지역 사업장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교섭구조를 바꾸고 있다.

개별교섭을 하는 국가에서는 단체교섭이 분배의 몫을 결정하는 기능에서
분배의 틀을 결정하는 기능으로 나아가고 있다.

즉 임금수준보다는 임금결정의 방법에,몫의 분배보다는 몫의 창출을 위한
공동노력이 단체교섭에서 강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힘의 관계에서 권리의 관계로, 권리의 관계에서
이익의 관계로 나아가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노사관계의 토대를 권력의
공유에서 정보의 공유로 전환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의 교섭구조는 쌍방적 관계에서 다면적 관계로 바꿀 필요가
있다.

교섭을 하기 전에 노사가 종적으로,그리고 횡적으로 조율을 함으로써 개별
교섭에 공동교섭의 장점을 가미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단체교섭은 노사의 이해관계를 규정하는 룰을 정하고 룰의 적용에
따른 세부적인 과제는 노사협의를 통해 해결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단체교섭을 통해 임금결정의 룰을 정하고 임금수준은 룰에 따라
자동적으로 결정되도록 하는 식이다.

단체교섭의 기능이 바뀔 때 노사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의 범위는 확대
된다.

시장경쟁의 격화와 기술혁신 등에 노사가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경영권이나 노동권에 대한 배타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노사가 공동으로 문제
를 해결할 수 있는 근거를 단체교섭에서 만들어야 한다.

교섭제도의 개선을 위한 노사의 조직적 노력이나 정부의 경제정책적 노력과
병행해 교섭력이 균형을 갖도록 법 제도를 정비하고 동시에 엄정하면서도
일관성있게 집행되도록 노동행정의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