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기준으로 국내그룹중 9위인 한보그룹이 공중분해될 처지에 놓이게 됐다.

무리한 기업소유욕이 불러온 대국이다.

금융계에서는 한보가 "부도"와 "공중분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된 원인
으로 세가지를 꼽고 있다.

당초 5조원이 넘는 돈이 소요되는 무리한 공사를 아무런 보장도 없이
시작한게 첫번째 근인이다.

한보측은 당초 당진제철소공사를 시작하면서 2조7천억원이면 준공이 가능
하다고 장담했으나 실제로는 5조7천억원이 소요되는 공사임이 드러났다.

이만한 규모의 공사를 구체적인 자금조달계획도 없이 시작한뒤 금융권에만
손을 벌리다가 결국의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는 것이다.

정태수 한보그룹총회장이 23일 보여준 경영권에 대한 무리한 집착도
한보철강을 부도로 내몰게한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채권은행장들은 22,23일 연속 회의를 갖고 "정총회장이 경영권을 포기
한다면 자금지원도 하고 은행공동으로 자금관리도 해주겠다"고 거듭 제의
했다.

그러나 정총회장은 이를 끝까지 거부함으로써 결국은 "회사도 죽고 자신도
죽는" 길을 택하고 말았다.

아울러 정부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특혜시비"를 우려,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당초 청와대나 정부에서는 한보의 부도처리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제일은행등 채권은행들은 지난 18일부터 1백50억원에 달하는 어음을 결제
하지 못해 "사실상의 부도상태"였는데도 막상 부도대전을 떼지는 못했다.

정부의 강한 압력 때문이라는게 정설이다.

정부는 부채가 5조7천8백86억원에 달하는 한보그룹이 공중분해될 경우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우려, 파국만은 막아보려고 노력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유착설"등의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한보철강을 살리는 무리수를
두는건 대선에 악재라는 판단에 따라 한보철강의 부도처리로 방향을 급선회
했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문제는 한보철강의 부도가 미칠 파장이다.

여신관리기준 9위,자산기준 14위로 국내계열사만도 22개에 달하는
한보그룹이 공중분해되면 그 파장은 엄청나다.

우선은 8백50개의 하청및 협력업체가 문제다.

당장 공사대금을 받지 못한 하청업체들의 연쇄부도는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에서 하청업체들에 대한 특단의 지원조치를 내놓지 않는한 한보의
공중분해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경제를 더 뒤틀리게 할수 있다.

금융기관이 입는 피해도 만만치 않다.

한보철강에 대한 금융권의 여신은 4조9천5백9억원에 달한다.

제일은행이 1조1천1백77억원에 달하고 있으며 산업은행도 8천8백98억원이나
된다.

조흥은행과 외환은행도 각각 5천21억원과 4천5백12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이밖에도 70여개 금융기관에서 한보에 대출이나 지급보증을 해주고 있다.

만일 이 돈이 고스란히 손실처리되면 제일은행등 일부 금융기관은 존립
근거가 뿌리째 흔들릴수 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선 금융기관의 인수합병(M&A)를 촉진시킬 가능성도 높다.

이와는 관계없이 한보의 부도처리과정에서 채권단들이 보여준 "결단"은
주목할만 하다.

채권은행들은 외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자금지원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견지, 부실기업정리의 새로운 모형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하영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