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서 <코아컨설팅 대표컨설턴트>

근로자들의 근본적인 요구는 일자리의 보장과 좀 더 많은 임금을 받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근로자들은 이를 관철하기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어 다중의 힘으로
파업등 쟁의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근로자들의 요구를 들어부는 곳은 정부가 아니고
경제활동을 통해 돈을 벌어들이는 기업이다.

따라서 기업이 돈을 벌지 못하고 도산하거나 해외로 나가 버린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첫째는, 세금을 못받아 나라가 거덜나고, 둘째로는,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게되어 국민들이 먹고 살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수순을 통하여 가난한 나라로 전락한 남미와 유럽
일부국가들의 모습을 지난 역사를 통해 생생하게 보아왔다.

며칠전 신문보도에 의하면, 96년도의 11개월동안 국내 30대 그룹이
38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냈다고 한다.

더구나 95년도에는 23억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냈는데도, 96년에는
무참하게 5개 그룹을 제외한 25개 그룹이 모두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재벌기업마저도 대외 경쟁력을
상실함으로써 해외시장에서 팔 상품이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다시 말해서, 그동안 저가정책으로 일관해 온 우리나라 기업들이
개발후진국들을 비롯해서 일부 선진국과의 가격졍쟁에서 결정으로 패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0년동안 거의 해마다 15% 이상의 임금상승을 비롯해서
세계 제일의 고비용으로 인해 기업들은 상품값을 올린 데에 반해, 미국을
비롯한 일부 선진국은 철저한 경영혁신과 감량경영으로 이른바 가격파괴라는
극약처방을 앞세워 경제회생을 이룩해 온 것이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업체인 미국 "에이티카니"의 프레드 스타인그래버
회장은 얼마전 내한하여 "감량고통 미루던 훗날 더 큰 아픔을 맛보게
되며 변신하지 않는 한국기업은 초 경쟁시대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라고
경고했다.

스타인 그래버 회장은 또 80년대 일본과 독일에 뒤저 자국내 시장에서까지
설 자리를 잃었던 미국 상품이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시 선두자리를 회복한
사례를 설명하면서 미국 기업은 대량해고등 감량경영으로 몸집을 줄일수
있는대로 줄인게 회생의 비결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인 IBM.GE.GM등은 수년동안에 걸쳐 인원을
30~40%를 감축했다.

이러한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성능을 가진
새로운 컴퓨터와 통신기기등 테크놀러지로 인한 노동인구의 대이동에
있다.

이러한 노동인구의 유동화는 현재와 같은 전환기에서 필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량 해고를 하고 명예퇴직을 강요하는 경영자를 냉혈동물이라고 욕을
한다.

그러나 기업은 이익확보를 위해 인간이 만든 가장 비정한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놀라운 것은 미국 굴지의 기업들은 인원감축의 명수들을 최고 경영자로
모셔오고 있는 것이다.

IBM의 최고 경영자인 루이스.가스너가 선임된 이유는 경영에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기 보다 인원감축등 경비절감의 적격자였기 때문이다.

크라이스러의 재무담당이었던 크리스터퍼.스테판은 결단력과 과감한
행동으로 인원감축의 명수로 인정을 받아 코닥사로 스카웃되자 증권시장에서
코닥사의 주가가 급상승했고 2주일후 IBM으로 옮긴다는 소문이 있자
이번에는 IBM의 주가가 급등했다는 것이다.

포드 자동차의 신임사장인 재크 내셔의 별명은 칼잡이이다.

무자비한 감원과 원가 절감으로 칼잡이란 별명을 얻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한국은행의 지난 86년부터 95년까지 10년동안의
국내 제조업의 비용구조 분석에 의하면 인건비가 지나치게 높은데다가
영업비의 비용등도 엄청나게 많아 장사를 해도 남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앞다투어 해외로 나가고 있다.

현대, 삼성, LG, 대우, 선경 등 5대 그룹은 무려 6백억달러를 10년동안에
걸쳐 해외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업계에서는 1천억달러를 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수많은 위험부담이 있어도 이렇게 해외로 나가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기업들의 실정을 정부나 정당인이나 노동계 지도자들이 똑바로 보고 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지난 96년 우리나라의 경상수지적자가 무려 2백30억달러로 적자 규모에서
미국에 이어 두번째 나라로 추락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적자폭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8%에 이르러 경제파탄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위험수위 5%에 육박하고 있다.

이렇게 한국은 침몰하고 있다.

한 번 침몰하기 시작하면 가속이 붙어 걷잡을 수 없이 가라앉고 만다.

우선 침몰부터 막아야 한다.

경제 활동이란, 기업경영이란 교과서에 쓰여 있는대로 모든 것을
이상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바고 경영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사정이 좋은 일본에서도 지식인들이 떨쳐 나섰다.

일본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오직 결과만을
생각한다는 무서운 주장들을 내놓고 있다.

앞으로 5년간 여야가 휴전하고 온 국민이 개개인의 이익과 주장을
유보하자고 호소하므로써 일본 국민은 또 세계 초일류 경제대국을
목표로 전 세계에 선전포고 하고 있다.

우리도 서로의 이해를 잠시 유보해야 할 때다.

그리하여 팔아먹을 상품이 없어 절대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