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원한다면 우리는 과식중독자는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넣어주기도
하고 아무튼 별의별 케이스의 입원 환자들이 있지요"

"하지만 선생님, 저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것과 같은데 병원에 갇혀
지낼 수는 없지요. 안 그래요?"

지영웅은 겁에 질린 눈으로 공박사를 바라본다.

"물론 지저분하게 계속해서 살지 않고, 생활의 패턴을 고치고, 더러운
말투를 고치고, 착하게 부처님이 시키는대로 순종할 수 있는 인격자가
되면 입원까지는 안 가도 되지요"

그러나 갑자기 폭발적으로 분노를 터뜨린다든가 하는 지영웅의 정서
불안은 아직도 치료가 안 되고 있다.

말만 그럴듯하게 하지 완전하지는 않다.

"지코치, 나하고 하나 약속합시다.

아주 나쁜 버릇이 있는데요.

당장 고쳐야 될 신사의 매너인데요.

왜 사타구니에 손을 갖다 대고 말을 하지요?"

그 순간 그는 또 무의식중에 왼손을 사타구니에 가져가다가 멈춘다.

"미안합니다.

박사님, 다시는 안 그러겠어요.

우리 황태자 한 형님이, 지금은 은퇴해서 잘 살고 있는 형님이 있었는데,
처음에 저를 만나서 여자들, 특히 중년 부인들을 호리는 제스처중에 바로
그런 손동작을 가끔 써야 효과적이라고 해서 그때부터 그렇게 많이 연습을
한, 훈련을 거친 동작입니다.

술을 한모금 마시면 거의 백프로의 효과를 보는 유혹의 손짓입니다"

"그만" 공박사는 그의 유치한 말을 싹둑 잘라 끊으며 양미간을 찌푸렸다.

눈치빠른 지영웅은, "박사님,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맹세합니다. 보기 흉하지요. 안 그럴께요"

그녀는 창밖으로 보이는 코엑스의 높고 빛나는 유리건물을 지그시
바라보며 기분을 달랜후, "맹세하세요. 그따위 나쁜 버릇을 그냥 두고는
우리 병원에 와서 나의 진료를 받을 수 없습니다.

사실 나는 지코치를 거절하려고 했어요.

우리는 싫은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보내지요.

만나기도 싫은 구제불능의 환자들도 더러 있거든요.

아예 정신병원으로 소개를 곧바로 하든가, 그런 중증의 환자들도 많아요"

"영화에서 보는 그런 정신병원 말씀이신가요?"

지영웅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는 듯이 그녀에게 애걸하는 표정으로
묻는다.

"그러니까 박사님, 저의 병명은 무엇입니까? 말하자면 중독증상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사실 섹스중독은 아니에요.

저는 아줌마들이 싫어요"

"그러니까 검소하게 사는 방법을 택해야 됩니다.

지영웅씨는 남의 카드로 쓸데 없는 물건을 보는대로 산다고 했지요?
금팔찌와 금목걸이도 많다고 했지요?"

그는 자랑하듯이, "네. 저는 요새 아주 실속있는 쇼핑을 해요. 주로
금은보석을 사요"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