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과 국민회의 김대중, 자민련 김종필총재 및 신한국당 이홍구
대표의 21일 청와대 4자영수회담은 일단 파업정국을 대화정국으로 전환시켰
다는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날 여야대표들은 지난 12월26일 새벽에 기습처리된 노동관계법,
안기부법 등 11개법의 원천무효화주장을 놓고 팽팽한 의견대립을 보여 대화
정국의 물꼬를 텄음에도 불구하고 정국불안의 불씨를 여전히 남겼다.

김대통령은 회담에서 야당측의 주장을 대폭 수용했으나 야당이 주장하는
11개법의 무효화.백지화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이에대해 양김총재는 11개법의 무효화를 주장, 재심의를 계속 요구하는
바람에 회담분위기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시간20분정도 계속된 이날 회담에서 김대통령은 먼저 노동법 기습처리로
일어난 정국혼란 및 민심불안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으로 회담을
시작했다.

김대통령은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동법을 개정했고, 이를 통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고 노력했으나 파업으로 오히려 수조원의 경제
손실이 발생하는 등 경제가 더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김대통령은 "국민을 편하게 하는 것이 정치의 할 일인데 오히려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며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야당의 영수회담제의를
받아들였다"고 영수회담수용의 배경을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노동법이나 안기부법이나 무엇이든지 국회에서 다시
논의해도 좋다"며 "국회에서 논의하면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이 어떤 주장을 하든지 일단 야당이 국회에 들어와 논의한다면 노동
관계법이나 안기부법의 재개정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김대통령은 그러나 "국회의장이 합법적으로 국회를 통과시켜 공포를 요청
해 헌법절차에 따라 공포한 법을 무효화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에 위배되는 일을 할 수는 없다"고 야당의 요구를 거절했다.

따라서 앞으로 정국은 여야간에 의견대립을 보인 노동법 및 안기부법의
무효화에 대한 여야의 협상결과를 더 지켜봐야 가늠할 수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여권에서는 영수회담에서 야권이 주장하는 사항을 대폭 수용한데다가
무효화주장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논리를 들어 계속 거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민심이 야권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고, 여권을 더
밀어붙여서 정국의 주도권을 계속 장악하려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전망
된다.

정국주도권을 놓고 여야가 이러한 "샅바"싸움을 계속 하는한 영수회담에도
불구하고 정국은 당분간 계속 표류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야의 "민심잡기"경쟁에서 민심이 어디로 흐를지는 아직 예단할
수 없다.

정부와 여당에 등을 돌린 민심이 야당의 투쟁일변도 전략에 대해 호의를
보일지는 의문이다.

국회에서의 노동법 및 안기부법 재논의를 강조하는 여당의 손짓에 야당이
마냥 거부할 수 없는 것은 이같은 이유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날 회담을 통해 파업정국의 공은 일단 야당쪽으로 넘어
갔다고 볼 수 있다.

정국의 순항여부는 야당이 국회에서의 재논의를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야당이 국회에 들어오더라도 노동관계법의 경우 여야간의 합의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노동관계법의 시행은 유보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최완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