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고 지루했던 한 해가 저문다.

언제는 만사가 잘 풀리기만 했을가마는 96년(병자년)은 정말 어렵사리 보낸
한해였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으로 선진국 대열에 끼어드는 모양새를 내기는
했지만 한마디로 외화내빈의 한해였고, 시련과 갈등이 이어진 365일이었다.

특히 경제 운용실적은 F학점이다.

경기는 급격한 내림세고 경상수지 적자는 눈덩이처럼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종적인 숫자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220억달러이상에 달해 연초
전망의 3배를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적자규모가 GDP(국내총생산)의 4%를 넘어서 IMF(국제통화기금)가 위험선으로
보고 있는 5%에 근접하게 됐다는게 96경제의 종합성적이다.

엔저로 철강 자동차 유리 등 일본상품과 경쟁관계에 있는 수출주력상품들이
큰 타겨을 입은데다 반도체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수출채산성이 더욱 악화됐기 때문에 국내기업들의 수익성은 최악의 상황을
기록했다.

주가가 문민정부 출범당시의 수준까지 떨어진 것도 바로 이같은 종합적인
경제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수도 있다.

경상수지 악화는 분수를 웃도는 소비가 큰 원인이 됐다.

유통시장이 본격적으로 개방되기 시작하면서 사치품을 중심으로 한 소비재
수입이 20%이상 늘어났고 해외여행 러시로 무역외수지 적자도 눈덩이처럼
커지는 국면이다.

고소득층의 과시적 소비행위가 크게 늘어난 것은 금융종합과세 실시를
앞두고 시중부동자금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어쨌든 국민저축률을 다시 끌어올려 이미 1천억달러를 넘어선 외채를 줄여야
하는 것은 이제 긴박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국내 주가가 떨어지고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되면서 해외금융시장에서 국내
금융기관들의 DR(주식예탁증서) 발행이 어려워지는 상황도 빚어지기 시작
했다.

이 때문에 단기차입을 통한 달러 확보에 나서는 은행이 늘고 있고 단기외채
비중은 갈수록 높아질 전망이기 때문에 외채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경제상황의 악화는 고용구조 조정 등으로 사회적 갈등의 표출을 결과하는
양상으로 이어졌다.

석유파동과 같은 급격한 대외환경변화 때문이 아니라 경쟁력이 떨어진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 때문에 빚어진 경제상황 악화였기 때문에 그 진통은
더욱 아픈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이른바 명예퇴직제 확산의 형식으로 우선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 풀이할수 있다.

경쟁력을 되찾기 위한 조직의 슬림화.

이른바 리스터럭처링이 불가피해졌고, 그 과정에서 간접부서 중고령층
사무직 인력이 우선 감축대상이 됐다.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에 취해진 것이지만
고용구조 조정의 파장은 컸다.

40대이상 사무직 가장 수난시대를 부른 명예퇴직제만으로도 그러했다.

기존의 평생직장에 대한 믿음이 깨져 정리대상이 되지 않은 사원들에게도
적잖은 좌절감을 안겨주는 등 예상하지 못했던 사회적 비용도 결코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구조조정은 이제 피할수 없는 과제로 우리에게 닥아왔다.

경제상황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달리 방법이 있을수 없다는데 인식이
모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불황과 인건비 상승에 따라 국내기업의 해외진출이 대규모화되고
가속화된 것도 구조조정작업의 일환이라고 볼수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재조업 공동화" 등 우려도 적지 않지만, 대기업은
물론 중규모기업들의 해외진출도 줄을 잇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요란한 소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심한 행정규제와 고금리 등으로 국내
기업환경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96년중 금융산업개편 등 산업구조 조정문제가 현안과제로 떠오른 것도
그런 측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금융산업의 효율성 제고 논의가 끝도없이 계속됐고, 그 결과가 은행법개정
금융산업 구조조정법 제정 등으로 제도화됐다.

유통업은 변혁의 바람이 가장 거셌던 영역이다.

할인점 등 대자본과 첨단기법을 무기로 한 새로운 형태의 유통업체들이
대거 등장, "가격파괴" 바람을 불러 일으키면서 재래시장과 상가에도 변화를
강요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중소형 자영점포들이 문을 닫는 사례가 크게 늘어나기도 했다.

전반적인 불황속에서도 정보통신업종의 투자는 극히 활발했다.

본격적인 뉴미디어시대가 눈앞에 왔다고봐 다투어 투자를 늘렸기 때문이다.

휴대전화의 경우 가입자가 거의 3백만명에 육박하는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기도 했다.

새로운 기술의 결과로 통신과 방송의 기술력 결합이 촉진되고 있어 이를
겨냥한 경쟁이 이미 예고되고 있는 국면이기도 하다.

96년중 정치.사회사건중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 것들도 적지 않다.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으로 더욱 경화된 남북관계도 그중 하나다.

남북경협이 전혀 진전을 보지 못한채 한해를 보내게 된 것은 특히 아쉬운
일중 하나다.

4.11 총선에서는 집권여당인 신한국당이 과반수 획득에 실패, 여소야대
국회가 나왔지만, 그것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분명치 않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