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나라 과학기술계는 과거 어느 해보다도 심한 몸살을 앓았다.

임금협상, 연구과제중심 운영제도(PBS) 시행 그리고 원자력사업인력의
급작스런 민간이관방침에 따른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시위로 연구분위기는
좀처럼 활성화되지 못했다.

출연연구소장이 3년 임기에 맞춰 대거 교체됐고 과학기술계의 최고수장인
과기처장관 역시 두번이나 바뀌는 등 정책의 기조도 흔들렸다.

그런 가운데 한민족과학기술자대회, 아태경제협력체(APEC) 과기각료회의,
고등과학원 개원에 앞서 노벨상 수상자들의 집단방한 등 국제적 행사가
이어져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과기처가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과학기술특별법의 핵심사안도 부처간 이견
으로 인해 관철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 원자력사업 이관 ]]]

핵폐기물관리사업 원자로계통설계 핵연료설계및 제조등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수행해 오던 원자력사업과 관련인력의 급작스런 민간이관 방침으로 촉발된
대치국면이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채 표류했다.

정부는 지난 6월 제245차 원자력위원회에서 "원자력사업추진체제 조정방안"
을 확정, 원자력연구소가 수행해 왔던 원전관련사업을 올해말까지 민간
산업체로 이관토록 했다.

방사성폐기물관리사업(1백56명)은 한국전력,원자로계통설계사업(3백43명)은
한전기술, 그리고 핵연료설계및 제조사업(1백26명)은 원전연료로 전원
이관키로한 것.

원자력시장의 개방에 발맞춰 경쟁력을 제고한다는 차원이었다.

관련연구원은 그러나 민간산업체로의 원전자립기술이관이란 원칙에는 동의
하지만 당초의 점진적 기술이전계획이 바뀌어 기술은 물론 인력까지 이관
대상에 포함된 것은 받아들일수 없다며 원자력산업체제조정대책협의회를
구성, 가족까지 나선 가두시위도 불사했다.

이들 민간업체가 원전사업수행과정에서 경제성만을 내세워 안전기조를
무시할 것이며 자신들이 자리를 옮기더라도 해당기업체질상 몇개월 버티지
못해 원전기술자립의 꿈은 물거품이 될 것이란 극도의 불신감으로 이어졌다.

과기처는 이들의 주장을 개인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밥그릇확보싸움
으로 규정, 이적시의 높은 대우 아니면 사직이란 단하나의 카드로 일관했다.

과기처관계자중에는 관련연구원들이 자리를 옮기도록 설득하는 수밖에는
다른 대책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이적동의서에 서명한 연구원은 대상자의 86%인 5백27명으로
과기처의 강경입장이 어느정도 먹혀들어간 상황이다.

하지만 원자로계통설계와 핵연료설계및 제조부문의 핵심인력중 상당수가
이달말까지 이적을 포기하고 다른 생계책을 찾아 나설수도 있어 원자력기술
완전자립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관련, 원자력사업을 이관받는 민간산업체가 걷게될 앞으로의 행보도
주목된다.

[[[ PBS 도입 파문 ]]]

PBS시행은 연초부터 과학기술계를 동요케 했다.

이 제도는 연구원의 보수까지 프로젝트에 포함시킨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것으로 연구원들의 집단반발을 초래했다.

연구원들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도입되어야할 제도라면서도 우리나라의
사회풍토에서는 생계위협은 물론 미래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핵심기초
기술개발연구를 수행할수 없도록 하는 제도라며 철회를 요청했다.

여러개의 프로젝트를 따지 않으면 기본생계비조차 확보할수 없고 그에따라
당장에 성과를 낼수 있는 자잘한 연구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게
연구원들의 주장이었다.

이 제도가 보완없이 시행되어도 문제될 것 없다는 연구원들이 더 많았지만
사업수완까지 갖추지 못한 연구원과 경력이 오래돼 인건비수준이 높은
나이많은 연구원들을 중심으로 불안감이 증폭됐다.

전반적인 기술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수행되어야하는 기반기술개발이
뒷전에 밀릴수 있다는 지적은 더욱 큰 문제였다.

과기처는 결국 구본영 전장관취임이후 이 사안에 대한 문제점을 받아들여
전면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종전의 입장에서 한발짝 물러섰다.

순수연구지원기관과 비연구성사업을 제도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개인별로
프로젝트 참여도에 따라 인건비를 지급하도록 된 규정도 바꾸었다.

즉 기관장이 각 연구소특성에 따라 팀별 그룹별로 인건비를 통합관리토록
하는등 연구원인건비의 안정적 확보및 배분에 대한 기관장의 자율권을 보장
함으로써 종전과 별반 다를게 없는 관리방식으로 후퇴했다.

[[[ 과기특별법 불발 ]]]

올해 과기계의 화두중 하나는 과기특별법제정이었다.

21세기 국가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인다는 목표아래 정부의 과기예산을
대폭 끌어올리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법안은 94년 14.3%인 국가총연구비중 기초연구비 비중을 2001년까지 18%선
으로 늘리는 것을 중심으로 과학기술진흥기금의 확충, 이공계대학육성및
연구활성화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핵심적인 내용은 "정부연구개발예산을 총예산의 5%로 한다"는
조항을 삽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조항은 부처간 협의과정에서 아예 없었던 일이 되어 버렸다.

다행히 야당의원들의 발의로 국회통신과학기술위원회 법률안심사소위원회
에서 이 조항의 명시여부가 쟁점이 됐으나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한채 해를
넘기게 됐다.

과기처는 이 법의 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막연히 과기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명제에만 매달린채 이 예산을 어디에 쓸 것인지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는등 앞뒤가 뒤바뀐 정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 미흡한 연구성과 ]]]

신명나는 연구풍토가 조성되지 않아서인지 올해의 연구성과는 기대에
못미쳤다.

나름대로 의미있는 현장응용기술개발성과가 많았지만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연구성과는 드물었다.

전기연구소가 7년간의 연구끝에 개발한 자기공명영상장치(MRI),
한국과학기술연구원팀의 리오셀섬유, 리니어모터, 제3세대 백금착물
항암물질, 고분자청색발광체개발, 생명공학연구소의 환경친화성 미생물농약
개발, 기계연구원의 플라즈마 탈황.탈질장치개발등 몇몇만이 역작으로
꼽혔다.

한효과학기술원 연구팀이 네이처지에 연구결과를 게재하는등 민간연구소들이
기대이상의 성과를 올린 점이 두드러졌다.

각종 과기교류행사는 어느 해보다 풍성했다.

세계 각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교포과학자들이 서울에 모여 우리민족의
과학기술역량을 과시했으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과기각료회의도
유치하는등 이 지역에서의 우리나라 위상을 높였다.

또 노벨상수상자배출을 목표로 설립된 고등과학원개원에 앞서 노벨상수상자
들이 대거 방문하는등 주목받았다.

[[[ 앞으로의 전망 ]]]

내년도 과학기술처예산은 올해보다 19.7% 증가한 1조21억원에 달한다.

이중 연구개발예산은 9천2백27억원으로 21.8% 늘었다.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그만큼 확대된다는 의미다.

과기처는 21세기 국가경쟁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될 핵심원천기술을
도출, 집중적이고 장기적인 미래원천기술개발사업에 내년부터 본격 착수한다.

선도기술개발사업과 출연연구소의 간판연구개발사업(스타프로젝트)등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확대를 통해 원천기술확보를 꾀하고 있다.

담보능력이 없는 중소기술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무형의 기술력을 평가해
장기저리로 융자해 주는 기술담보제도를 시행하고 연구소 보유기술의
산업체이전도 적극 지원하는등 과학기술과 경제의 연계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 김재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