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쥬네.

사생아로 태어나 어머니로부터도 버림받고 일생을 기이한 행적으로 살며
정신병원과 감옥을 전전하다가 결국은 작은 호텔방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음을 맞이했던 작가.

백화점에서 손수건을 훔치다 체포돼 "도둑시인"이라 불리는 기인으로
브레히트도 그의 삶을 시로 쓴 적이 있다.

대학로 미리내소극장에 가면 장 쥬네의 독특한 언어와 양식, 사상이
표현된 부조리극 "하녀들" (극단 춘추, 류근혜 연출)을 만날 수 있다.

"하녀들"은 합리적인 틀에서 벗어나 일정한 형식을 거부하는 부조리극의
특성대로 다양한 해석과 시도가 이뤄진 작품.

섬세한 감각의 연출가 류근혜씨는 모든 배역을 남자배우로 구성, 신선한
해석을 보여준다.

극에 등장하는 하녀 솔랑쥬와 끌레르는 자매.

이들은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는 마담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마담의
정부인 무슈를 경찰에 고발한다.

그러나 무슈는 석방되고 그들의 음모는 탄로날 위기에 처한다.

그러자 두 하녀는 홍차에 독을 타 마담을 살해하려고 하지만 무슈의
석방소식을 들은 마담은 기쁜 나머지 홍차는 입에 대지도 않고 무슈를
만나기 위해 나간다.

마담이 외출한 후 두 하녀는 연극을 시작한다.

극속에서 마담이 된 끌레르는 하녀 끌레르역을 맡은 솔랑쥬에게 차를
가져오라고 하고 실제로 마담을 살해하기 위해 준비한 차를 마시고 죽는
장면으로 연극은 끝난다.

결국 끌레르는 극중 극에서 마담이 돼 마담을 살해한 셈.

실제 죽은 것은 끌레르이며 현실의 마담은 그시간에 무슈를 만나 환희의
축배를 들고 있었을 것이다.

마담이 사회지배구조를 상징하고 두하녀들이 구조에서 소외되는 인간들을
대변한다고 볼 때 끌레르의 죽음은 결국 그 소외를 극복할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두 하녀로 등장하는 중견배우 권혁풍씨와 하덕성씨의 능수능란한 콤비
연기는 가끔씩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하녀들과 마담을 남자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은 관객들의 극중 몰입을
방해하는 "거리두기" 기제로 작용한다.

이는 자칫 심각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작품을 오히려 편안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만든 연출자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