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천사 : 한경서평위원회
** 저 자 : 문흥호
** 출판사 : 당대


실학은 당대의 허위의식에 맞서 학문이 비현실적 관념론으로 빠지는
것을 경계해왔던 실천적 작업이었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나 전문 지역연구자 양성을 위한
지역연구 열풍은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학문관을 주입하는 데 급급하다.

최근 지역연구에서 실학의 의미가 단순히 해당지역을 그려내는 것을
넘어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점에서 문흥호교수가 펴낸 "13억인의 미래"는 두가지 중요한
미덕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건조한 이론주의나 서술적 사례연구의 틀에서 벗어나 중국을
통해 우리사회를 성찰하게 하고 문제해결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우리시대의 중요한 담론의 하나인 "통일"의 화두를 장악하고
그것을 수미일관하게 놓치지 않는 데서 "학문하는" 치열성이 곳곳에 배어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대체적으로 1978년 개혁-개방이후 변화된 정치적 지형을
전사로 하고 등소평이후의 전망까지를 연구범위로 설정하여 시계열적으로
"두개의 중국"의 통일논의를 명료하게 바라보고 있다.

분석단위도 중국과 대만의 내부논의에 치우치지 않고 중국이 지닌
국제정치적 중요성에 착목하여 중미관계, 중일관계, 중.대만관계는
물론이고 동북아, 세계적 차원에서의 통일환경 변동을 탐색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통일문제가 국제정치적 규정력이 보다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필자의 문제의식과 경험연구를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틀을 기초로 제1부에서는 2개의 중국간의 역사적인 성격을
차분하게 분석했고 제2부에서는 2개의 중국이 펼치는 통일정책을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또 제3부에서는 등소평이후의 중국과 대만간의 통일전망을 다루면서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인가를 집중적으로 언급했다.

특히 체제와 이념의 상호인정, 인적교류의 활성화, 해외교포의 역할,
정치와 비정치적 분야의 분리, 정부와 기업의 공동보조, 세대와 출신
지역간의 갈등해소,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통일추진, 권력과 인민을 구분하는
방식을 시사점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대만정치의 내적 동학에서 변용될 수 있는 통일논의의
성격, 예컨대 대만 국민당과 민진당의 보수대연합을 통한 통일운동의
억압이라든가, 중국의 민간이나 시민사회의 통일논의등에 대한 분석이
제한되어 "두개의 중국"에서의 통일논의가 권력적 수준에서의 제안투쟁
(Proposal Confrontation)의 범주에 머물고 있는 점은 아쉽다.

그리고 한반도 역사의 특수성이 왜 중국에서는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는지에 근거한 남북관계의 기능적 교류의 한계에 대한 해석도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사족이 이 책의 높은 학문적 성과와 중국 자체를 사랑하는
필자의 열정을 깎아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3억인의 미래"는 나무와 숲을 함께 보게하는 훌륭한 길잡이로서
중국을 통해 세계정치로 안내하는 흔치 않은 책이다.

이희옥 < 한신대 교수.중국 정치학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