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도쿄 특파원>

지금은 다소 잠잠해졌지만 일본에서는 지난해까지만해도 전산업계가
리스트럭처링(사업재구축)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말이좋아 리스트럭처링이지 실제로는 종업원해고를 중심으로한
비용절감책에 다름아니다.

세계를 제패할 것처럼 보이던 일본경제가 버블경기가 무너지면서
일시에 추락한 때문이다.

최근들어 기업들은 경기가 여전히 부진함에도 불구, 경상이익증가율이
두자리숫자를 나타내는등 경영상황이 점차 호전되고 있다.

리스트럭처링에 힘입어 비용이 그만큼 축소된 덕분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기업이 회생하는데는 종업원들의 가슴아픈 희생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종신고용으로 상징되는 일본형경영시스템이 근본부터 무너진다는
비판까지 초래한 주요 리스트럭처링사례를 소개한다.

<< 젊은층도 명예퇴직 >>

소니와 파이오니어가 대표적이다.

명예퇴직은 중년층이상이란 관념을 깨고 20대와 30대직원들까지
대상으로 삼아 일본산업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소니는 현재 근속10년.

35세이상 일반사원들을 대상으로 내년2월까지의 기한으로 희망퇴직자를
모집중이다.

대상자는 약6,000명에 이르며 퇴직을 희망할 경우 18개월분의 급료가
추가로 지급된다.

파이오니어의 경우는 더욱 놀라워 27세이상사원중 650명의 퇴직희망자를
모집했다.

27세는 명예퇴직대상으로서는 일본산업계 최연소기록이다.

<< 제판 통합 >>

히타치제작소가 히타치가전을 흡수한 것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히타치제작소는 제품의 기획및 생산, 히타치가전은 판매를 각각
담당해왔으나 지난해4월 한회사로 통합됐다.

매출액이 3조7,400억엔, 4,300억엔을 각각 기록하고 있던 업체간의
대형통합이었기 때문에 어떤 파장을 몰고올지 업계를 바짝 긴장시켰다.

그러나 히타치의 제판통합은 잉여인력을 "잘라내는" 것이 주요목적이었다.

당시 양회사를 합한 종업원은 8만2,000여명에 달했으나 통합후
지난 3월결산시점에서는 7만5,000여명에 머물고 있다.

당시 히타치가전의 종업원(3,200여명)을 2배이상 웃도는 7,000여명이
감원됐다는 이야기다.

주로 희생된 것은 관리직등 간접부문 사원들이었다.

<< 공장폐쇄 >>

닛산자동차가 지난해 자마공장을 폐쇄한 사실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모았다.

30여년만에 폐쇄된 이공장은 60년대로서는 획기적인 최신설비를 갖추고
연20만대씩을 쏟아내 "자동차왕국 일본"의 상징으로 군림해오던 공장이다.

닛산은 이 공장폐쇄로 100억엔에 이르는 합리화효과를 올렸다.

그러나 닛산은 이것으로도 부족해 95~98년에 이르는 3개년합리화계획까지
세웠다.

종업원을 7,000명 줄이는 것을 비롯 원재료및 부품비용삭감등을 통해
총3,600억엔을 절감한다는 것이다.

"더이상 회복불능"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닛산은 이같은 안간힘을
통해 지난 3월결산에서는 4년만에 "눈물겨운" 영업이익흑자(400억엔)를
기록했다.

규격공통화 철강업계와 자동차업계가 차량용강판의 품종을 대폭 줄이기로
한 것은 양 업계의 운명공동체적 성격을 다시 한번 입증한 사건이었다.

지난해말 양 업계는 자동차용강판의 신규격을 제정 종전 650개가
넘던 강판품종을 112개로 축소시킨다는데 합의했다.

철강업계의 경우는 수주 생산 재고등 각단계에서 관리비용을 대폭
삭감할 수 있고 자동차업계로서도 자재조달및 관리비용을 크게 축소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 물류개선 >>

마쓰시타전공의 사례는 "물류야말로 돈덩어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마쓰시타전공이 물류문제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버블경제붕괴이후
매출액이 급격히 하락하면서부터.

지난91년 염원의 매출액 1조엔대에 들어서는가 싶더니 이내 내리막길로
들어서 93년엔 9,600억엔에 머물러 90년수준으로 후퇴했다.

반면 물류비는 증가세를 계속해 90년에 비해 100억엔이나 늘어났다.

이같은 사실을 파악한 이마이 기요스케사장은 창업후 76년만에 처음으로
사장직할의 물류전문팀을 발족시켰다.

이팀은 우선 1,100억엔에 달하던 재고를 700억엔으로 40% 축소하고
회전일수도 31일에서 20일로 대폭 줄였다.

이와함께 물류센터에 보관하는 상품도 납기별로 분류했다.

이렇게하자 물류센터의 사용공간이 절반이하로 줄어들어 전국30개에
이르던 물류센터도 10개로 축소됐다.

또 물류비부담을 명확히 하기 위해 각사업부가 사전에 물류부문에
정액으로 물류비를 지불하고 추가적으로 발생한 비용은 관련사업부가
부담토록 했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이회사는 물류비 100억엔절감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면서 매출액및 이익도 증가세를 회복했다.

<< 사업양도 >>

지난 94년5월18일 쇼와전공의 오하시 미쓰오전무(당시 상무)는
경단련회관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폴리스티렌사업을 아사히화성에 넘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합의로 쇼와전공은 회사가 소유하고 있던 고유의 폴리스티렌관련재품의
공업소유권을 양도하는 한편 고객을 아사히화성측에 인계하는데도 협력했다.

쇼와전공에서 이사업부문은 연10억엔정도의 적자를 기록해왔고
시장점유율도 2%선에 불과했다.

양도액도 20억엔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이사업의 양도는 쇼와전공으로서는 대단히 가슴아픈 결단이었다.

일본에서는 화학업체는 폴리에틸렌부터 폴리스티렌까지 종합생산치
않고는 "진정한 화학업체"가 아니라는 인식이 있다.

이회사는 현재 폴리에틸렌과 폴리프로필렌의 두분야에 주력하고
있다.

<< 자회사를 모델로 >>

지난 93년12월 모리시타 요이치 마쓰시타전기사장은 오사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조직을 단순화하는 경영쇄신책을 발표했다.

종전 사장-부문장-사업본부장-사업부장으로 연결되던 조직체계를
사장-사업부장으로 단순화시킨 것이다.

이조치로 주요스태프를 비롯한 간접부문의 인원이 6,000명이나 줄었다.

그해 에어컨판매에서 매출액이 30%나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조직구조에 울화가 치민 탓이다.

그런데 이같은 과감한 조직개편은 사실은 자회사인 마쓰시타 고토부키전자
의 조직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모리시타사장은 취임전 고토부키전자가 불황에도 견조한 성장세를
지속하는 원인을 분석키 위해 이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고토부키전자가 5,000명에 이르는 종업원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본사인원은 40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는 마쓰시타전기에도 "작은 본사"를 옮겨 심었다.

이같은 조치에 힘입어 94년3월결산에서 638억엔에 그쳤던 마쓰시타의
경상이익은 이후 증가세를 회복해 95년3월 870억엔, 96년3월 1,031억엔으로
각각 증가했다.

<< 신간선방식 개혁 >>

신간선개혁으로 불리는 요코가와전기의 경비절감책은 그야말로
획기적이다.

이회사의 미가와 에이지(미천영이)사장은 "경영의 신"으로 통하는
J 웰치 제너럴 일렉트릭회장도 찬사를 보낸 인물이다.

미가와사장이 대개혁에 착수한 것은 지난92년8월.

그해 3월결산에서 영업이익이 60%나 줄어든 것을 계기로 충격적 목표를
제시했다.

"제품코스트 30%이상인하, 간접코스트 50%삭감, 영업효율 20%향상"등이
그것인데 사원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코스트인하대상으로 선정된 프로젝트에는 현장의 젊은사원들만을
배치했다.

전체를 조정하는 역할도 한사람으로만 국한시켰다.

이같은 작업결과 종전 31장의 판금을 사용하던 측정기용 박스를 1장으로
개량하고 조립시간도 종전 1시간을 9초로 단축하는 등의 획기적 성과가
나타났다.

이회사는 계획 착수후 2년간 84억엔의 절감효과를 올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