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규화씨(47)가 4번째 시집 "지리산과 인공신장실과 시" (경남
간)를 내놓았다.

81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한 뒤 "시와 경제" 동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그가 오랜 침묵을 깨고 8년만에 선보인 시집.

신부전증에 시달리면서도 건강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시인의 내면이
시 곳곳에 배어있다.

특히 투병생활의 단면을 엿보게 하는 "인공신장실에서"는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구절들로 가득하다.

얼마전부터 "일주일에 세번씩, 한번 갈 때 네시간씩/병원의 인공신장실을
드나들게 된" 시인은 "이날까지 내가 다니던 골목길과 뛰놀던 풀밭과/봄날
막 피어난 분홍의 복사꽃"을 바라보며 밝고 따스한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현실은 "흔들리고 바스락대며 안절부절 못하는 시간"속에 갇혀
있고 몸은 고단하다.

그래서 그는 고민한다.

"내가 그것들과 어떻게/갈라서야 하는가".

삶에 대한 열망은 은유와 상징을 뛰어넘는다.

그는 "이제 나는 희망에서/또는 멋모르고 따라간 죽음앞에서/해방되고
싶다"고 자신을 추스리며, 때로는 가장 직설적인 어법으로 "살아야 한다,
나는 일주일에/세번씩 나를 살려내야 한다"고 다짐한다.

건강한 사람보다 더 맑은 심성으로 희망을 얘기하는 그는 "남의 받들음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남을 받들어 주기 위해 오실/당신을 기다리며"
상처받은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있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