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한국경제의 '퍼지' 현상 .. 유한수 <포스코경영연>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유한수 < 포스코경영연구소장 >
일상생활에는 여러가지 불확실한 일들이 많다.
이런 불확실하고 애매모호한 일들을 연구하는 분야가 퍼지(Fuzzy)
이론이다.
경제이론은 대개 엄격한 수학적 모델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퍼지이론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러나 사실 경제현실만큼 불확실한 것도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요즘의 우리경제가 그렇다.
우리경제는 그동안 고도성장을 지속해 왔지만 불확실성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그래서 경제현실을 설명하는게 더 어려워진다.
우선 노동시장을 보자.
경기침체의 여파로 기업마다 감량경영을 한다면서 직원들을 내보낸 결과
명예퇴직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중소제조업체들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퇴직자는 많아도 사람은 귀한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최근 중소기업은행이 2,870개 중소제조업체를 대상으로 3.4분기중
고용악화의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경기가 부진해서 사업을 축소하는 바람에 사람을 뽑지 않았다는
대답은 전체의 27.7%에 불과했다.
오히려 채용인력을 늘리려 했지만 도저히 종업원을 확보할 수가 없었다는
대답이 55.9%였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중 하나가 노동시장의 유연성
부족이라고 보고 노동법개정안을 만들었다.
그런데 노사양측은 모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노사양측은 현재의 노동법에도 불만이지만 개정안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측은 개정안이 확정될 경우 서로 불리하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대한 개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노동시장이 "퍼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해가 안되는 일은 또 있다.
경기는 하강하는데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수입이 계속
증가하는 바람에 경상적자가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수입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경쟁력 강화의 밑거름이 되는 물류설비나 자본재 수입이 그렇다.
문제는 소비재의 수입이 계속 증가해 적자폭을 늘린다는 점이다.
사치성 소비재는 물론이고 이제 저가 소비재도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다.
소비증가율이 둔화되는 가운데 소비재 수입이 증가한다는건 상식적으로
설명이 안된다.
우리 경제가 침체한 것은 경기사이클 등 일시적 영향도 있지만 구조적인
고비용-저효율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우리경제는 대기업이 주도적으로 끌고가는 시스템이다.
30대 재벌이 우리경제의 약 70%쯤을 차지한다.
투자 생산 금융차입 등 여러가지 면에서 그렇다.
그러니 대기업들의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당연히 문제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중소기업이 오히려 더 고비용구조로 시달리고 있다.
지난 상반기중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대기업이 11.8%인 반면
중소기업은 16.3%이다.
금리도 대기업은 연평균 10.9%를 부담하고 있는데 반해 중소기업은
11.9%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올해의 경우 대기업은 수출증가율이 겨우 1.1%정도에
그칠 예정인 반면 중소기업들은 두자리수의 증가율을 달성할 전망이다.
전반적으로 수출이 어려워지면서 중화학 업종은 고전하는데 경공업 제품은
견실한 수출증가세를 나타내 경기침체의 영향을 다소 완화해주고 있다고
한다.
이와같이 우리경제는 딱 부러지게 그 특성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두 얼굴을 가진게 우리경제다.
성장률 6.5%에 물가 4.5%라는 괜찮은 측면과 경상적자 200억달러에 대외
부채 1,000억달러라는 어두운 얼굴이 그것이다.
따라서 무엇이 우리의 실상인지 애매해진다.
상황이 퍼지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응방안도 달라져야 한다.
퍼지이론은 전자제품이나 로봇 분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예컨대 자동카메라로 이동하는 물체의 초점을 정확히 잡기는 힘들다.
그러나 퍼지 카메라의 경우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여 초점을 잡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경제가 퍼지한 경우 정책도 퍼지한 것이 정확한 대응이다.
물론 정책의 일관성은 가급적 유지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정책당국이 섣불리 진단하고 처방하는 것은 퍼지한 정책이 아니다.
퍼지한 상황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밀어붙이기식 정책을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비난을 듣는 것도 퍼지한 북한을 퍼지하게
대하지 않았던 탓이 아닌가 한다.
퍼지한 정책이란 정부가 상황변화에 따라 잘 해주겠지 하고 국민들이
믿도록 하는 것이다.
이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퍼지한 정책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2일자).
일상생활에는 여러가지 불확실한 일들이 많다.
이런 불확실하고 애매모호한 일들을 연구하는 분야가 퍼지(Fuzzy)
이론이다.
경제이론은 대개 엄격한 수학적 모델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퍼지이론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러나 사실 경제현실만큼 불확실한 것도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요즘의 우리경제가 그렇다.
우리경제는 그동안 고도성장을 지속해 왔지만 불확실성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그래서 경제현실을 설명하는게 더 어려워진다.
우선 노동시장을 보자.
경기침체의 여파로 기업마다 감량경영을 한다면서 직원들을 내보낸 결과
명예퇴직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중소제조업체들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퇴직자는 많아도 사람은 귀한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최근 중소기업은행이 2,870개 중소제조업체를 대상으로 3.4분기중
고용악화의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경기가 부진해서 사업을 축소하는 바람에 사람을 뽑지 않았다는
대답은 전체의 27.7%에 불과했다.
오히려 채용인력을 늘리려 했지만 도저히 종업원을 확보할 수가 없었다는
대답이 55.9%였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중 하나가 노동시장의 유연성
부족이라고 보고 노동법개정안을 만들었다.
그런데 노사양측은 모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노사양측은 현재의 노동법에도 불만이지만 개정안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측은 개정안이 확정될 경우 서로 불리하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대한 개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노동시장이 "퍼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해가 안되는 일은 또 있다.
경기는 하강하는데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수입이 계속
증가하는 바람에 경상적자가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수입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경쟁력 강화의 밑거름이 되는 물류설비나 자본재 수입이 그렇다.
문제는 소비재의 수입이 계속 증가해 적자폭을 늘린다는 점이다.
사치성 소비재는 물론이고 이제 저가 소비재도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다.
소비증가율이 둔화되는 가운데 소비재 수입이 증가한다는건 상식적으로
설명이 안된다.
우리 경제가 침체한 것은 경기사이클 등 일시적 영향도 있지만 구조적인
고비용-저효율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우리경제는 대기업이 주도적으로 끌고가는 시스템이다.
30대 재벌이 우리경제의 약 70%쯤을 차지한다.
투자 생산 금융차입 등 여러가지 면에서 그렇다.
그러니 대기업들의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당연히 문제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중소기업이 오히려 더 고비용구조로 시달리고 있다.
지난 상반기중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대기업이 11.8%인 반면
중소기업은 16.3%이다.
금리도 대기업은 연평균 10.9%를 부담하고 있는데 반해 중소기업은
11.9%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올해의 경우 대기업은 수출증가율이 겨우 1.1%정도에
그칠 예정인 반면 중소기업들은 두자리수의 증가율을 달성할 전망이다.
전반적으로 수출이 어려워지면서 중화학 업종은 고전하는데 경공업 제품은
견실한 수출증가세를 나타내 경기침체의 영향을 다소 완화해주고 있다고
한다.
이와같이 우리경제는 딱 부러지게 그 특성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두 얼굴을 가진게 우리경제다.
성장률 6.5%에 물가 4.5%라는 괜찮은 측면과 경상적자 200억달러에 대외
부채 1,000억달러라는 어두운 얼굴이 그것이다.
따라서 무엇이 우리의 실상인지 애매해진다.
상황이 퍼지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응방안도 달라져야 한다.
퍼지이론은 전자제품이나 로봇 분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예컨대 자동카메라로 이동하는 물체의 초점을 정확히 잡기는 힘들다.
그러나 퍼지 카메라의 경우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여 초점을 잡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경제가 퍼지한 경우 정책도 퍼지한 것이 정확한 대응이다.
물론 정책의 일관성은 가급적 유지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정책당국이 섣불리 진단하고 처방하는 것은 퍼지한 정책이 아니다.
퍼지한 상황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밀어붙이기식 정책을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비난을 듣는 것도 퍼지한 북한을 퍼지하게
대하지 않았던 탓이 아닌가 한다.
퍼지한 정책이란 정부가 상황변화에 따라 잘 해주겠지 하고 국민들이
믿도록 하는 것이다.
이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퍼지한 정책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