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당황해하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합병설은 터지고 영업환경은 어느 때보다 빡빡하게 돌아가고
있다.

예대마진은 줄어들고 유가증권 손실은 눈덩이.

여기에 사정이다 특검이다로 정신없는 한해를 보냈다.

최근에는 OECD 가입이라는 또하나의 부담을 안게 됐다.

조흥은행은 이달초 각 영업점에 비과세저축 수신드라이브를 더이상 걸지
말도록 지시했다.

임원까지 동원해 한건의 실적이라도 더 올리려던 한달전과는 사뭇 딴판이다.

"계약금액만 1조원이 넘었다.

기존 적금이야 해지율이라도 높지만 비과세저축은 "비과세"라는 점 때문에
해지고객이 별로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자칫하면 1~2년뒤 역마진을 감수해야 할지 모를 상황이다"
(김학수 조흥은행상무)

외형을 좇자니 수익성이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왔다는 말이다.

일반인에겐 우왕좌왕으로 비치지만 외형과 수익성은 은행입장에서 어느 것도
포기할수 없는 "두마리 토끼".

이같은 사례는 또 있다.

지난 6월 제일은행이 국내은행 처음으로 2억달러규모의 외화후순위채를
발행했을 때이다.

발행시장은 홍콩.

당연히 해외투자가들의 투자대상이거니 하는게 통념이건만 사정은 달랐다.

거의 1억달러이상을 국내은행들이 거둬들였다는게 이제는 "비밀"아닌 비밀.

수익률이 리보(런던은행간 금리)+0.98%였으니 괜찮은 물건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발행자가 국내은행인 터라 심사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 계산에서 기존채권보다 비율을
더 갉아먹는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그다음 이들 은행들이 보여준 모습은 우스꽝스러운 것을 넘어
그야말로 처량할 지경이다.

BIS비율이 떨어진다고 너나없이 후순위채를 발행했고 DR(주식예탁증서)를
쏟아냈다.

결과는 물론 "너죽고 나죽기"식이 됐다.

그렇다고 은행만을 일방적으로 몰아세울 것도 못된다.

은행들이 이같이 허겁지겁 되는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98년부턴 국내 은행산업이 개방된다고 한다.

또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가입국의 은행이 됐다.

그러니 외국은행에 대항키 위해 자산을 불리는 것이고 수익성도 추구하는
것이다.

자산의 건전성도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외국에선 자산건전도가 떨어지는 은행을 아예 거들떠고 보지 않는 실정.

좇아야 하는 토끼가 한마리 더 늘어난 셈이다.

은행들이 특히 긴장하는 이유는 올들어 "합병"이란 테마가 성큼 다가왔다는
점이다.

합병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등장했다.

은행장이 구속되도 합병설이 튀어나왔고 정부도 수시로 "망하는 은행"
운운하며 살벌스런 분위기를 조성했다.

정부는 또 말끝마다 부실금융기관을 정리한다고 했다.

합병 당하지 않기 위해 이익금을 많이 내는 튼실한 은행이 돼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

일부 은행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합병에서의 주도권을 생각했다.

외환은행은 올 상반기중 무려 2조5천억원어치의 CD(양도성 예금증서)를
발행하기도 했다.

무조건 외형부터 늘리고 보자는 전략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때만 되면 떠도는 합병설을 외면할수 없었다"(외환은행 관계자)는게
솔직한 고백이다.

달라진 금융환경에서 외형 건전성 수익성을 한꺼번에 잡고자 이리뛰고
저리뛰는 은행들의 모습이다.

<이성태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