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한복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 이숙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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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자 <화가 / 고려대 교수>
30년전쯤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전송가"라는 미국영화가 있었다.
전쟁고아를 돌보는 한국인 보모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미국헬기
조정사역인 록 허드슨이 주연이었다.
허드슨의 도움으로 고아들을 헬기로 피난시키게 된 테일러가 고아들과
함께 뛰어가는 장면이 나왔다.
쪽머리를 한 테일러는 한복을 미국식으로 고친듯한 흰저고리와 육체미를
나타낼수 있도록 주름을 없앤 통자루같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요란하게 엉덩이를 흔들며 뛰는 바람에 좁은 치마폭에는 히크의
율동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제조된 한복은 물론 한국여성의 모습과 전혀 다르게 표현된 그녀의
연기는 아주 우스꽝스럽고 어색했다.
우리나라 여성이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할수 있는 한복차람의 뛰는
모습을 세계적인 명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이다.
그가 많이 관찰하고 오래 연습했다 해도 흉내정도는 낼수 있겠지만
한국여성의 옷맵시나 걸음걸이는 우리 여성들처럼 자연스럽게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 우리 문화는 전반적으로 서구화에 치우쳐 있지만 미술은 1930년대
이후 외래미술인 서양화가 활발히 유입되어 우리화단에서 한국화를 제치고
주도적 위치를 차지할 정도가 되었다.
특히 해방이후 우리화가들의 상당수는 뉴욕의 새로운 사조를 먼저
받아들여 모방하는 것을 미술의 선진화로 생각하고 뉴욕미술을 해바라기처럼
뒤따르기 바빴다.
거대하고 폭발하는 듯한 정서에서 나온 50년대의 미국적 다이내미즘의
액션페인팅이나, 그 반대인 냉철한 기류에서 파생된 60년대의 미니얼리즘,
70년대이후 공연미술 설치미술등을 미국정서와 무관한 우리 화가들이
받아들인 것은 마치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한복이나 연기처럼 어색한것은
아니었을까.
70년대이후 국제미술의 포스트모던 현상은 뉴욕을 탈피해서 자국, 또는
자민족미술로 복귀하고 있다.
우리미술도 우리 전통과 미의식에 충실한 한국적 미의 창출에 진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5일자).
30년전쯤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전송가"라는 미국영화가 있었다.
전쟁고아를 돌보는 한국인 보모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미국헬기
조정사역인 록 허드슨이 주연이었다.
허드슨의 도움으로 고아들을 헬기로 피난시키게 된 테일러가 고아들과
함께 뛰어가는 장면이 나왔다.
쪽머리를 한 테일러는 한복을 미국식으로 고친듯한 흰저고리와 육체미를
나타낼수 있도록 주름을 없앤 통자루같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요란하게 엉덩이를 흔들며 뛰는 바람에 좁은 치마폭에는 히크의
율동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제조된 한복은 물론 한국여성의 모습과 전혀 다르게 표현된 그녀의
연기는 아주 우스꽝스럽고 어색했다.
우리나라 여성이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할수 있는 한복차람의 뛰는
모습을 세계적인 명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이다.
그가 많이 관찰하고 오래 연습했다 해도 흉내정도는 낼수 있겠지만
한국여성의 옷맵시나 걸음걸이는 우리 여성들처럼 자연스럽게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 우리 문화는 전반적으로 서구화에 치우쳐 있지만 미술은 1930년대
이후 외래미술인 서양화가 활발히 유입되어 우리화단에서 한국화를 제치고
주도적 위치를 차지할 정도가 되었다.
특히 해방이후 우리화가들의 상당수는 뉴욕의 새로운 사조를 먼저
받아들여 모방하는 것을 미술의 선진화로 생각하고 뉴욕미술을 해바라기처럼
뒤따르기 바빴다.
거대하고 폭발하는 듯한 정서에서 나온 50년대의 미국적 다이내미즘의
액션페인팅이나, 그 반대인 냉철한 기류에서 파생된 60년대의 미니얼리즘,
70년대이후 공연미술 설치미술등을 미국정서와 무관한 우리 화가들이
받아들인 것은 마치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한복이나 연기처럼 어색한것은
아니었을까.
70년대이후 국제미술의 포스트모던 현상은 뉴욕을 탈피해서 자국, 또는
자민족미술로 복귀하고 있다.
우리미술도 우리 전통과 미의식에 충실한 한국적 미의 창출에 진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