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가장 넓은 "운동장"에서 가장 많은 관중을 수용하며 벌이는 경기.

그러다 보니 해프닝도 많고 별일도 끊이지 않는다.

다음은 관중과 관련한 "별일" 두토막이다.

<>그래도 기브는 못준다.

1983년 10월 영국 웬트워스GC에서는 월드매치플레이선수권이 벌어지고
있었다.

주연배우는 닉 팔도와 호주의 그레엄 마쉬.

두선수는 15번홀까지 무승부의 팽팽한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사건은 16번홀에서 벌어졌다.

닉 팔도의 아이언샷은 그린을 오버했다.

오버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볼은 겹겹히 둘러싼 관중들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몇초 후" 적막한 관중들 사이에서 볼이 붕 떠서 날라오더니
사뿐히 그린에 안착했다.

그것은 누가봐도 관중이 팔도의 볼을 줏어 그린으로 던진 것이었다.

문제는 두 선수가 그걸 볼만한 위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보지는 못했지만 프로정도되면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법.

규칙상 움직이고 있는 볼이 국외자 (여기서는 관중)에 의해 방향이
바뀌거나 멈추면 있는 그대로 치게 돼있다.

그린에 다가온 두 선수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경기위원에 판정을
의뢰했으나 경기위원 역시 "규칙상 OK"를 할 수 밖에.

팔도는 "랄랄라" 그린에 올라 점잖게 투퍼트로 파를 잡았다.

그러나 "열 받은" 마쉬는 70cm 파퍼트를 실패, 보기를 하며 한홀을 졌다.

팔도는 17번홀에서도 버디를 잡아 마쉬를 두홀차로 이겼다.

그 다음날 아침 신문기사의 흐름은 이랬다.

"팔도는 마쉬의 70cm 퍼트에 기브를 주어야 했다 (매치플레이에서는
얼마든지 기브를 줄 수 있다). 그래야 공평한 것 아닌가"

<>모르긴 몰라도 도망쳐야 한다

1952년 미뉴욕주 위카길CC에서 벌어진 팜비치 라운드로빈 골프대회
최종라운드 16번홀 (파3,223야드)에서 캐리 미들코프의 2번아이언샷은
페이드 볼이 되며 그린 오른쪽 프린지로 바운드 됐다.

크게 원바운드된 볼은 공교롭게도 그린 가장자리에 앉아 있던 중년남자의
오른쪽 상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중년의 남자관중은 자신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
못했다.

자신은 그저 앉아 있을뿐인데 갑자기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웃는것
아닌가.

웃을뿐만 아니라 관중들은 자신을 손가락으로 연방 가리키고 있었고
자신의 주위로 우르르 몰려들고 있었다.

그 중년남자는 눈이 점점 동그랗게 커지며 겁먹은 표정이 되었다.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했나. 사람들이 왜 저러지"

그 중년남자는 "안되겠다"싶었던지 벌떡 일어나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가 벌떡 일어나 뛰기 시작하자 사람들도 같이 뛰며 "스톱! 스톱!"하며
외쳤다.

그 남자는 이제 "걸음아 날 살려라"가 됐다.

그렇게 뛰는데 "이봐 볼은 주고 가야지"하는 외침이 귀에 들어왔다.

주머니를 더듬으니 과연 볼이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볼이지" 그는 볼을 꺼내 "아무렇게나" 던졌다.

그것은 경찰에 쫓기던 도둑이 훔친 물건을 내던지고 도망치는 것과
같았다.

문제는 볼이 원래 떨어진 곳에서 30m는 "이동"됐고 설상가상으로
내던져진 볼의 위치가 바위틈이란 것이었다.

그때의 판정역시 앞 스토리와 마찬가지로 "있는 그대로 쳐야한다"였다.

미들코프는 그 홀에서 더블보기를 하며 결국 2위에 그쳤다.

미들코프는 "그 사건때문에 우승트로피와 상금 1,000달러를 날렸다"고
한탄했으나 이미 장갑은 벗은 뒤였다.

52년도의 1,000달러면 얼만가.

팔도와 미들코프의 "정반대 케이스"에서 보듯 프로는 관중도 잘 만나야
한다.

( 김흥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