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어려움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경상수지 적자가
89억달러를 기록하면서부터이다.
특히 올해 2.4분기에는 GDP(국내총생산)성장률이 크게 둔화되면서 위기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무역수지 적자폭이 GDP의 4%를 웃돈다면 이는 우려할 만한 수준임에
틀림없다.
지금의 무역수지 위기에 대해 정부 업계 학계의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 경제의 고비용 저생산성 구조를 지적한다.
그러나 또다른 두가지 근인도 무역수지 위기를 몰고왔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무역수지 적자가 우리 경제의 자유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80년대 이후 우리 경제는 대외 개방을 꾸준히 실천해 왔다.
수입자유화가 이루어졌고 해외 여행이 자유로워졌으며 자본시장이 빠른
속도로 개방되고 있다.
자본시장의 자유화는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는 외국
투자자들의 자본 유입을 가속화시켰고 이는 원화를 평가 절상시켰다.
또 그간의 소득 증가로 유발된 소비 수요의 증가는 수입개방과 함께
수입을 증가시키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
특히 해외 여행과 해외 유학의 급증은 무역외수지를 통해 경상수지를
악화시켰다.
무역수지 위기의 또 다른 원인은 세계 경제 여건의 변화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에는 최근의 엔저현상과 우리의 주력 수출 상품 시장의 공급과잉 현상
등이 포함된다.
엔화의 가치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정되는, 말 그대로 외생
변수이다.
엔화의 환율은 미국과 일본의 경제상황 및 경제정책 등을 반영하면서
국제 외환시장에서 결정되는 변수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결정됐던 것이다.
또 우리 수출의 40%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 철강 자동차 석유화학 등의
분야에서 국제 가격이 인하되어 수출부진을 야기시켰다.
오늘의 상황에서 무역정책은 무엇이며 과연 무역정책은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제기해야 할때이다.
무역정책이 있다면 그 정책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 경제가 과거에 그랬듯이 고도 성장기에 있는 생산적인 경제에서는
돈을 빌려 투자해도 돈을 빌리는 비용보다 생산성이 높기 때문에 해 볼만한
것이고 때문에 정책적으로 그런 방법을 선택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상황이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지는 않다.
설비투자 증가율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는 경기순환 주기상 불황의 늪에서
경상수지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역정책을 말할 수 있는 정책수단은 있는가.
WTO(세계무역기구)체제하에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회원국으로서
국제규범을 지키자면 무역수지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수단은
이미 정부의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현 상황에서 정부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는 정부가 장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부규제가 기업들에 비용상승 부담을 줌으로써 경쟁력제고의 발목을
잡고 있는게 현실이다.
정부는 더이상 기업들로부터 도움은 되지 못하더라도 제발 방해는 하지
말아 달라는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한다.
둘째 수출산업의 가격 경쟁력을 회복하자면 임금 금리 지가 등 생산 요소
가격, 나아가서는 일반 물가의 안정이 이뤄져야 한다.
셋째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는 분명 정부의 몫이나 지금같은
비효율적인 운영으로는 안된다.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전시행정이 최상의 선택일 수 있게 만드는
현재의 잘못된 유인체계가 정부 부문의 비효율성의 원인이라는 점을 깨닫고
이를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