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인식이 점점 굳어져가고 있다.

연말에 약 200억 달러에 이르게 되리라는 경상수지 적자폭확대, 명예퇴직
증가와 신규채용 감소로 인한 실업 증가, 기업의 54%가 불황을 겪고 있다는
설문조사결과 등은 경제위기 신호로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경제위기와 관련, 김영삼 대통령은 최근 "경쟁력 10%높이기"운동을
제안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경제의 문제점인 고비용-저효율 구조의 개선방안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경제위기의 진단과 처방에 문제점은 없는 것일까.

먼저 경제위기를 진단해 보자.

우선 현정부 집권이후 93년 9월 발간한 "신경제 5개년계획 93-97"의
내용을 텍스트로 삼아 몇가지 거시경제지표를 살펴보면 경제성장률은
93-96년간 연평균 실적치가 7.6%로서 전망치 6.9%보다 높다.

1인당 GNP는 96년말 1만달러 시대가 전망됐었으나 1년 앞당겨진 95년말에
이루어졌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같은 기간동안 연평균 전망치가 4.1%인데 실적치는
5.2%이다.

경상수지는 94년에 균형을 이룬후 96년에는 21억달러 흑자가 전망되었으나
실적치는 정반대로 94년에 45억달러 적자, 96년 8월까지 무려 151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를 선진국 및 경쟁국과 비교해보면 90-95년간 연평균 성장률에 있어
미국 1.8% 일본 2.0% 독일 2.8% 영국 1.2%이고, 경쟁국인 대만은 6.5% 홍콩
1.5% 싱가포르 8.4%이다.

이기간 동안 한국의 성장률은 7.9%로서 싱가포르 다음으로 높다.

한편 95년말 실업률은 선진국인 미국 5.1% 일본 3.4% 독일 9.9% 영국이
8.3%이고, 경쟁국인 대만은 1.8% 홍콩 3.2% 싱가포르 2.7%이다.

95년말 한국의 실업률은 2.0%로서 대만 다음으로 낮다.

이렇듯 한국경제는 신경제5개년계획과 비교할 때 경상수지 적자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고, 선진국 및 경쟁국과 비교할 때는 호황인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여-야정치권, 경제계 등은 한국경제를 위기
상황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위기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고비용-저효율로 인한 경쟁력 약화라는데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고비용이란 고임금 고금리 고지가 고물류비용, 그리고 저효율이란
선진국과 경쟁국에 비해 낮은 생산성으로 일컬어지는데 고비용-저효율의
실상은 어떠한가.

한국은 최근 10여년간 임금상승률이 선진국이나 경쟁국보다 훨씬 더 높게
나타나 있다.

95년 제조업의 시간당 임금은 7.4달러로 싱가포르 대만 홍콩보다 높은
편이다.

금리도 90-95년간 평균 연13.8%를 기록, 선진국 및 경쟁국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땅값 역시 선진국 및 경쟁국보다 월등히 높다.

한 예로 천안공단의 분양가는 평당 51만2,000원으로 영국 윈야드 공단의
5,000원보다 무려 100배이상 비싼 편이다.

물류비용은 94년 매출액대비 미국이 7%, 일본은 11%이나 한국은 17%로서
역시 월등히 높은 편이다.

생산성은 제조업의 경우 일본의 3분의1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고비용-저효율 구조개선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자 정부와 경제계가
내놓고 있는 처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정부 전경련 경총 KDI는 2급 이상 공무원, 30대 기업은 임원, 공공부문
등의 임금동결을 제안하고 있다.

정부는 금융중개비 절감을 통해 금리인하를 추진하고, 또 지가안정을
위해 투기꾼의 명단을 발표하겠다고 한다.

여기에다 제품가격 인하까지 유도하려 하고 있다.

물류비용 절감과 생산성제고방안은 아직 구체화돼 있는 것 같지 않다.

이와 관련된 몇가지 문제점의 보다 면밀한 분석이 요구된다.

우선 임금동결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 같다.

노조의 반발이 예상은 되나 현재 명예퇴직과 대기업의 신규채용 감소로
실업이 증가하고 있으며 한국의 높은 임금수준이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임금증가는 빠른 속도로 안정돼가고 있다.

제조업의 명목임금상승률은 95년에는 9.9%였고 이는 국민경제 노동생산성
증가율보다 더 낮은 수준이다.

임금상승률이 노동생산성 증가율보다 낮을 경우에는 임금상승은 생산
비용을 오히려 감소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임금상승은 고비용구조의 원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임금동결은 단기에서만 효과가 있을 뿐 규제가 풀리고 나면 폭등하게돼
오히려 경제에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72년 미국의 닉슨정부가 실시한 4단계 임금-가격동결 정책은 실패의
대표적인 예로 교과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대안은 물가안정과 생산성 제고에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현재 노사개혁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변형근로제 등과 같은 제도를 도입하여 노동시장을 신축적으로 운용하도록
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금리는 어떠한가.

명목이자율은 물가상승률과 실질수익률을 합한 결과와 같다.

실질 수익률은 흔히 경제성장률과 대체해서 사용되기도 한다.

90-95년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 7.8%와 물가상승률 6.6%를 합하면 14.4%가
되는데 이는 이기간의 금리 13.8%에 근접한다.

따라서 한국에서 명목금리가 높은 이유는 높은 물가상승률과 높은 수익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때 금리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은 물가안정에서 찾아야 한다.

90-95년 연평균 물가 상승률은 미국 3.5% 일본이 1.7% 대만이 3.8%
싱가포르 2.8%로서 한국의 6.6%는 이들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이들 나라의 명목이자율이 한국보다 훨씬 낮은 이유는 낮은 물가 상승률에
있는 것이다.

현정부는 금융실명제에 이어 부동산실명제도 실시함으로써 땅값 안정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바 있다.

그러나 땅값안정을 통해 고비용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 100여명의 토지
투기꾼의 명단을 발표함으로써 목적이 달성될 수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마련과 합리적인 제도의 도입이 필요할 것이다.

물류비용 절감을 위해서는 정부가 중장기계획을 세워 SOC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한국은 일본 등 선진국의 SOC투자 계획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경쟁력을 10% 올리기 위해서 제품가격 인하를 유도하려는 정책은 지나치게
졸렬하다.

독과점의 제품가격은 때로는 규제할 필요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불황을 겪고 있는 기업에 제품가격인하를 유도한다면 기업의 생산성은
오히려 감소하게 될 것이다.

저효율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적어도 중기계획이라도 세워서
생산성을 올리는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위축된 투자분위기를 살려서 기업으로 하여금 기술개발에 투자하게
하고, 근로자를 위한 여러가지 훈련을 강화하게 하고, 근로자의 근로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며, 무엇보다도 SOC투자 및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의 경제활동을 활성화시켜야 할 것이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경쟁력10%를 올리기 위해서 생산요소가격(임금 금리
땅값 물류비용)과 제품가격을 동결하거나 인하한다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를
말살하는 행위다.

시장경제에서는 여러가지 시장가격을 동결 규제하는 대신 수요와 공급을
적절하게 관리함으로써 가격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스럽다는
것을 정책입안자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