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유럽연합(EU)이 통신장비조달 협정에 가서명, 통신서비스업체의
장비조달시장을 둘러싸고 벌여온 힘겨루기가 상호 개방으로 마무리됐다.

우리측은 한국통신의 장비조달만을 개방하고 EU내 브리티시텔레콤과
프랑스텔레콤등 16개 사업자의 통신장비조달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즉 삼성 LG 대우등 국내 장비제조업체들이 유럽내 대부분의 통신사업자에게
장비를 공급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는 "실리"를 챙긴 반면 유럽내
업체들은 한국통신의 장비조달 개방이라는 카드를 확보했다.

정부가 EU측과 통신서비스업체의 장비조달을 둘러싸고 협상을 시작한 것은
지난 93년 10월.

92년 한국통신의 장비조달시장을 미국에 개방하는데 자극을 받은 EU측이
역내 통신업체에도 미국업체와 동등한 자격을 부여할 것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비롯된 것.

EU의 이같은 요구는 91년 당시 국내업체의 대EU 통신장비수출은 약
3억1천만달러에 이르는데 반해 EU로부터 수입하는 물량은 7천만달러 정도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 영향을 받았다.

이후 95년에는 EU에 대한 수출물량이 4억6천만달러로 늘어났으나 수입은
1억2천만달러에 불과해 EU측을 더욱 자극했다.

EU는 정부와 지난95년에만 3차례의 협상을 가졌으나 아무 성과를 얻지
못하자 우리나라를 WTO(세계무역기구)의 분쟁해결절차에 회부하는 강수를
들고 나왔다.

이에따라 양측은 WTO분쟁 해결절차중 협의절차를 개시, 지난 5월부터
6차례의 협의를 가진 끝에 극적으로 합의에 이르렀다.

정보통신부는 이번 협정의 양허대상기관중 영국정부가 1주의 골든셰어를
보유한 브리티시텔레콤(BT)을 제외한 통신업체가 대부분 해당국에서 독점적
으로 사업을 벌이고 있어 실질적으로 EU역내 통신장비시장이 개방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밝혔다.

반면 EU측은 줄곧 요구해온 민간통신사업자의 장비구매에 대한 정부불간섭
보장문제를 민간통신사업자의 자율성을 강조한 WTO규정을 담은 서신을 교환
하는 선에서 마무리짓는 "명분"을 취하는데 만족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또 EU역외국가의 EU내 시장참여를 제한하고 있는 "Buy-EU" 조항을 국내
통신장비업체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기로 했으며 중소기업대상의 수의계약
품목 및 인공위성은 예외품목으로 정해 협정적용을 배제, 개방에서 제외
시켰다고 덧붙였다.

정통부는 이번 합의의 또다른 성과는 협정과 관련해 발생할 문제를 신속
하게 처리할 수 있는 협의 및 분쟁해결절차를 WTO분쟁해결절차에 의거해
마련키로한 점을 들었다.

민간통신사업자의 장비구매 불간섭을 둘러싸고 지리한 공방을 벌이고 있는
미국측에 대해 미국의 국내법 적용을 배제하고 EU와 마찬가지로 WTO체제
내에서 협상을 진행하자고 강력히 요구할 수 있는 사례가 마련됐다는 것.

또 통신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지분제한 완화를 통해 통신서비스시장을
완전개방한다는 목표아래 진행되고 있는 WTO협상에서도 EU와 협조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돼 우리에게 유리한 결과를 끌어 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게 정통부측 해석이다.

< 김도경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