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메이커] 리처드 리 <홍콩 사업가> .. "야심찬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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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TV".
한국의 안방시청자에게도 낯설지 않은 아시아 최대의 위성방송이다.
그러나 이 방송의 실질적 설립자가 20대의 홍콩기업가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올해 29세의 리차드 리.지난 90년 홍콩 최대 거부 리카칭(68)이 스타TV를
설립할때 실무를 진두지휘한 인물이 바로 아들인 리차드 리다.
그는 출중한 외모와 빼어난 패션감각으로도 유명하다.
미시사경제주간지 포천지 최근호는 그를 "옷잘입는 거물기업인"으로 꼽았을
정도.
하지만 정작 그를 홍콩재계의 "스타"로 만든 것은 스타TV 경영당시 보여준
선천적 사업가 기질이었다.
본능적인 사업감각을 갖춘 것으로 소문난 그의 사전엔 무모한 도박이란
없다.
그의 치밀한 계산에 근거한 신중한 투자는 부친을 박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경영스타일은 지난해 스타TV 매각건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남들은 뛰어들지 못해 안달인 TV사업을 버린다"라는데 대해 말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경쟁이 치열해 사업성이 떨어졌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 그의 사업본능이 새로운 사냥감을 탐지해낸 것도 스타TV를 버린
또다른 이유.
그의 새로운 연인은 바로 금융분야다.
그는 지난 93년 세운 퍼시픽 센추리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금융사업에 박차
를 가하고 있다.
그의 두번째 사업은 초반부터 청신호를 보여주고 있다.
이중 보험분야의 약진은 특히 두드러진다.
계열사인 탑 글로리 보험회사는 이미 홍콩에서 약정고 기준으로 3위에
올라섰다.
이러한 승승장구에도 리 회장의 사업욕심은 끝이 없어 보인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지의 부동산및 사회기반시설에도 투자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아시아 전역으로 활동무대를 넓히겠다는 의지에서다.
그는 얼마전 형과 공동으로 부친의 허친슨 웡푸어 그룹을 물려받아 또한번
화제에 올랐다.
일부에선 그의 활발한 사업행보가 결국 "허친슨 왕국"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사전포석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퍼시픽센추리를 내손으로 키워내는 것이 일생 최대의 꿈"
이라며 이러한 "색깔있는" 의미부여를 일축하고 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성공했다는 말은 듣지 않겠다"는 이 젊은 야심가가
부친을 능가하는 걸출한 사업가로 성장할지 주목거리가 아닐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2일자).
한국의 안방시청자에게도 낯설지 않은 아시아 최대의 위성방송이다.
그러나 이 방송의 실질적 설립자가 20대의 홍콩기업가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올해 29세의 리차드 리.지난 90년 홍콩 최대 거부 리카칭(68)이 스타TV를
설립할때 실무를 진두지휘한 인물이 바로 아들인 리차드 리다.
그는 출중한 외모와 빼어난 패션감각으로도 유명하다.
미시사경제주간지 포천지 최근호는 그를 "옷잘입는 거물기업인"으로 꼽았을
정도.
하지만 정작 그를 홍콩재계의 "스타"로 만든 것은 스타TV 경영당시 보여준
선천적 사업가 기질이었다.
본능적인 사업감각을 갖춘 것으로 소문난 그의 사전엔 무모한 도박이란
없다.
그의 치밀한 계산에 근거한 신중한 투자는 부친을 박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경영스타일은 지난해 스타TV 매각건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남들은 뛰어들지 못해 안달인 TV사업을 버린다"라는데 대해 말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경쟁이 치열해 사업성이 떨어졌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 그의 사업본능이 새로운 사냥감을 탐지해낸 것도 스타TV를 버린
또다른 이유.
그의 새로운 연인은 바로 금융분야다.
그는 지난 93년 세운 퍼시픽 센추리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금융사업에 박차
를 가하고 있다.
그의 두번째 사업은 초반부터 청신호를 보여주고 있다.
이중 보험분야의 약진은 특히 두드러진다.
계열사인 탑 글로리 보험회사는 이미 홍콩에서 약정고 기준으로 3위에
올라섰다.
이러한 승승장구에도 리 회장의 사업욕심은 끝이 없어 보인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지의 부동산및 사회기반시설에도 투자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아시아 전역으로 활동무대를 넓히겠다는 의지에서다.
그는 얼마전 형과 공동으로 부친의 허친슨 웡푸어 그룹을 물려받아 또한번
화제에 올랐다.
일부에선 그의 활발한 사업행보가 결국 "허친슨 왕국"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사전포석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퍼시픽센추리를 내손으로 키워내는 것이 일생 최대의 꿈"
이라며 이러한 "색깔있는" 의미부여를 일축하고 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성공했다는 말은 듣지 않겠다"는 이 젊은 야심가가
부친을 능가하는 걸출한 사업가로 성장할지 주목거리가 아닐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