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관한 명상을 담은 시집 2권이 나왔다.

맹문재씨의 "먼 길을 움직인다"와 이양희씨의 "사과향기가 만드는
길" (실천문학 간).

이들의 시에는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과 풍요로운 내면 세계가 함께 담겨
있어 읽는 사람의 마음을 따스하게 한다.

삶의 여정에 비유되는 길은 처음과 끝, 과거와 미래, 그리움과 희망을
잇는 메타포.

맹문재씨의 "먼 길을 움직인다"는 궁핍한 생활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건강함이 돋보인다.

그의 시에선 "시골 텃밭에서 갓 뽑아낸 채소같은 풋풋함"이 느껴진다.

지난 길들은 "미끄러운 비탈"이거나 "발 디딜 틈 없는 통로"였지만
한발한발 걷다보면 "장기적금 1회분을 부을 수 있는" 여유와 "못난
친구들과 잔 돌릴 수 있고 심지어/노동시의 슬픔도 읽을 수 있는"
넉넉함이 생기는 법.

"새벽에 나서는 설 귀향길"에서 비로소 그는 "그리움이 먼 길을
움직인다"고 되뇌인다.

이를 통해 그는 과거와 맞닿은 그리움이 자기반성의 현재를 지나 한번도
밟아보지 않은 미래의 길로 이어지고, 마침내 "큰 가슴으로 적을 안는"
힘에 도달하는 것임을 일깨워준다.

이양희씨의 "사과향기가 만드는 길"은 기다림과 감춰진 것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하다.

그는 "사람들 바삐 가는 저길을 버리고/저녁이면 날 부르는 숲 속
작은길로, 혼자" 가겠다고 노래한다.

여기에는 "따뜻한 흙속에 발을 묻고/날 찾아올 누군가를 오래 기다리다/
나도 한그루 나무로 지워지리"라는 소망이 깔려 있다.

"내게서 꽃피어 아름답게 흔들릴" 풀씨 하나를 발견하는 시인의
감수성이 아름답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