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첼로 등 현악기의 명품이라면 17~18세기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스트라디바리 구와르네리 등을 친다.

피아노는 1856년 미국에서 만들기 시작한 스타인웨이가 유명하다.

그러나 이들 명기는 전문기의 연주용이지 일반 가저에선 너무 고가이므로
구매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30여년전만 해도 일반 가정에서 사용한 피아노는 대개 일본의 야마하나
독일의 이바하가 보통이었다.

그러나 1956년 신향피아노 (영창악기의 전신)와 58년에 삼익악기가
설립돼 피아노를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은 물론 세계 피아노제조업계의
판도가 달라졌다.

삼익이나 영창이 제작한 피아노가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악기업계의 양대산맥인 영창악기와 삼익악기가 최근
명암이 엇갈려 화제가 되고 있다.

삼익악기가 지난달 23일 부도를 내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준 반면
영창악기는 3일에 창립 40주년을 맞게 된 것이다.

영창악기나 삼익악기는 모두 해외에서 알아주는 브랜드였지만 두
메이커의 경영전략은 아주 달랐다.

영창악기는 업종 다각화없이 비교적 악기제조라는 대대적으로
사업다각화에 나섰다.

삼익악기의 12개 계열사중 90년에 인수할 삼송산업 에스아이가구
우성기계 송우물사 등은 주력기업인 삼익악기와 연관이 적거나 별도의
사업이었다.

그러나 이 두사의 치열한 경쟁덕분에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악기생산국이
될수 있었고 우리 대기업들이 악기업종에 뛰어들었었으나 양사의 튼튼한
벽을 넘지 못하고 사업자체를 포기할 정도로 탄탄한 기술력을 갖고 있었다.

또 삼익이나 영창이나 점차로 품질이 고급화돼 일반 가정용 뿐아니라
음악회장에 연주용으로 비치되기도 했다.

삼익악기는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캐프 데이비드에 그랜드 피아노 2대를
납품했던 사실을 자랑한다.

하긴 두사 모두 노동집약적 사업인 악기업체의 특성상으로 국내의 높은
임금과 지가가 큰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두사는 국내 제조공장을 인도네시아.중국 등지에 이전하는 등
70년대 영화를 살리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었다.

영창악기의 창립 40돌을 축하하면서 삼익악기도 하루 속히 갱생해서
전날의 명성을 되찾게 되기를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