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찰원 판관은 가씨 가문으로부터 돈을 먹은지라 장화에 대한 판결을
어떻게 내려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수 없었다.

왕아나 가진, 가용은 일단 혐의가 없는 것으로 했지만 가련까지도
혐의가 없는 것으로 해서 장화를 무고죄로 다스려야 하는 건지, 장화가
우이저를 찾아가도 좋다는 판결을 내려야 하는 건지 생각이 오락가락
하였다.

이때 희봉이 풀려난 왕아를 판관에게 보내어 가련의 죄를 묻지 않는
대신 장화가 우이저를 찾아가도 좋다는 판결을 내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판관으로서도 매부 좋고 누이 좋은 판결이라 잘 되었다 싶어 희봉이
부탁한 대로 판결을 내렸다.

그리하여 희봉은 가련을 위해서 따라 판관에게 돈을 먹일 필요는
없게 되었으므로 가련을 빼낸다는 핑계로 우씨로부터 받은 돈은 그대로
착복할수 있었다.

장화의 아버지는 다시 가씨 가문으로부터 돈을 뜯어낼 기회를 잡았다
싶어 아예 장화와 함께 판관의 판결문을 들고 가련 대감댁으로 찾아왔다.

희봉은 슬그머니 우이저를 내세워 그들을 상대하도록 하였다.

자기 어머니가 장화의 아버지에게 돈 열 냥을 주고 파혼장을 받아낸
사실을 알고 있는 우이저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수 없었다.

무엇보다 가난에 찌들고 노름과 술에 빠진 장화에게로 시집을 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우이저는, 돈을 받고 파혼장을 써주고서는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고
장화의 아버지에게 따지다 말고 심장이 하도 두근거리고 숨을 제대로
쉴수 없어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비틀거렸다.

시녀들이 달려와 우이저를 부축하여 방으로 들여 침상에 뉘었다.

그 모든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희봉은 슬며시 고개를 돌리고
고소를 머금었다.

희봉이 판관으로부터 그런 판결을 받아낸 것은 사실 우이저에게 충격을
주고 그 마음을 뒤집어놓으려고 그랬던 것인데, 과연 효과 만점인
셈이었다.

희봉이 왕아를 불러 돈 백 냥을 건네주며 지시하였다.

"이 돈 백 냥으로 장화와 장화의 아버지를 달래봐.

이 돈을 가지고 고향으로 내려가 차라리 다른 여자를 구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이야.

그리고 장화가 직접 작성한 파혼장을 받아놓고 영수증도 반드시
챙기라구, 뒤에 다른 말 하지 않도록"

왕아가 희봉이 시키는 대로 하자 장화와 그 아버지는 이게 웬떡이냐
하고 파혼장과 영수증을 써주고 물러갔다.

희봉은 장화 무마조로 우씨로 부터 받은 돈 삼백 냥에서 이번에는
이백 냥을 착복할수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