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우선 가련 대감을 고소하란 말이지?"

장화가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는지 또 한번 왕아에게 반문하였다.

"가련 대감은 지금 출장을 떠나고 집에 없어. 네가 고소를 한다고
해도 도찰원 판관이 당장은 가련 대감을 불러 심문하지 못할 거란 말이야.

그러니 가련 대감을 고소하면서 나도 함께 고소하란 말이야"

"아니, 너를 왜?"

"내가 너와 우이저의 약혼을 강제로 파하는 데 가련 대감의 심복으로
중간에서 왔다갔다 하며 다리를 놓았다고 말이야.

너의 고소로 내가 도찰원으로 불려 가게 되면 내가 일의 전말을 다
털어놓을 테니까.

그러면 가사 대감 집이 난리가 날 거야"

왕아는 자신의 계략을 생각하고 음흉한 미소를 떠올렸다.

결국 장화가 왕아의 권유대로 가련과 왕아를 고소하는 고소장을
써서 도찰원에 접수시켰다.

도찰원 판관이 그 고소장을 보고 청의 (검푸른 제복을 입은 나졸)들을
영국부로 보내어 가련과 왕아를 소환해 오도록 하였다.

청의들은 소환장을 드고 오기는 했으나 감히 영국부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문지기들을 시켜 소환장을 전달하려고 하였다.

그때 대문 밖에서 청의들을 기다리고 있던 왕아가 나서며 기꺼이 소환에
응했다.

"가련 대감님은 지금 출장중이시니 내가 도찰원으로 가리다"

도찰원으로 불려간 왕아는 장화에게 미리 말했던 대로 자초지종을
자백함으로써 가진과 가용, 우시 들을 그 사건에 끌어들였다.

그 무렵, 희봉은 하인 왕신을 시켜 도찰원 판관에게 왕아를 풀어주도록
부탁하면서 돈 삼백 냥을 뇌물로 먹엿다.

왕아의 자백으로 소환을 받게 된 가진과 가용도 돈 이백 냥을 판관에게
먹여 사건이 잘 마무리되도록 하였다.

이렇게 한바탕 난리가 있은 후,희봉이 가진대감댁으로 건너가 우이저를
남편 가련의 첩으로 넘겨준 경위를 따졌다.

그러자 가진은 아들 가용에게 책임을 돌리고,가용은 발뺌을 할 요량으로
희봉을 어머니 우씨에게로 대리고 갔다.

희봉은 우씨를 보자 속에 쌓이고 쌓였던 울분을 토하기 시작했다.

"형님, 어떻게 이러실 수 있어요? 형님이 여동생을 제 남편의 첩으로
정 들이고 싶었다면 떳떳하게 중매꾼을 내세워 할 일이지, 왜 내가 모르게
쉬쉬 해가며 갈보년 붙여주듯이 그렇게 했어요?

내가 강짜가 심한 여자라 형님 여동생 머리채라도 잡아챌까 싶어
그랬나요?

아니면 아예 나를 쫓아내고 여동생을 정실로 앉히려고 음로를 꾸몄나요?"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