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초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앞에서는 이색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백화점에 쇼핑나왔던 젊은 여성들은 설치미술가 김형태씨의 인도로
무대에 설치된 피라미드에 A C Z 등의 알파벳문자를 적어 나갔다.

설치미술이 끝난 뒤에는 어어부밴드 등 언더그라운드그룹의 전위적인
음악공연과 한국무용이 이어졌다.

세계물산이란 의류업체가 숙녀복 "AB.F.Z"를 내놓으며 마련한 퍼포먼스로
일종의 신제품발표 이벤트였다.

이 행사를 기획한 대홍기획의 김영민국장은 "신문이나 방송광고대신
소비자에게 신제품을 직접 알리는 이색 퍼포먼스를 선택했다"며 "무조건
상품을 선전하기보다는 재미있는 눈요깃거리와 함께 문화행사를 지원한다는
자부심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색다른 구경거리를 만난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다.

회당 2,000~3,000명에 달하는 관객들은 주최측이 마련한 각종 이벤트를
즐기며 서서히 신제품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세계물산의 신제품발표 이벤트는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신촌 그레이스백화점, 대구 대구백화점 등 제품이 겨냥하는
젊은 여성이 모이는 곳마다 차례로 이어졌다.

코리아나화장품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연극 "불 좀 꺼주세요"의
공연장에서 "실연광고"를 시도해 눈길을 끌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여배우 한 명이 객석에 나와 "제가 여기에
머드팩을 놔두었는데 혹시 본 사람이 없나요"라며 묻는 것이다.

관객들이 난데없는 소동에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여배우는 물건을
찾는 척하며 제품의 특징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최근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세일즈프로모션(Sales Promotion)의
현장이다.

세일즈프로모션이란 각종 전시회나 신상품발표회같은 이벤트,
스포츠마케팅, 길거리에서의 경품제공 등 4대매체를 통한 광고 이외의
판매촉진활동을 말한다.

광고처럼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효과는 없지만 소비자와의
직접적인 교감을 통해 강렬한 메시지를 남기는게 장점이다.

"참 재미있는 구경을 했어"라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효과도
부수적으로 얻어진다.

세일즈프로모션의 인기는 단적으로 대형 전시장이나 행사장이
부족한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은 장소 대관문제가 기업행사 개최여부에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정도다.

국내 이벤트들은 과거엔 기업자체 또는 비교적 영세한 프로덕션을
중심으로 이뤄졌으나 대전엑스포를 계기로 대규모 투자와 첨단 노하우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몇몇 주요광고회사들을 중심으로 신규사업분야로
급부상했다.

광고사는 특히 아이디어와 기획력을 함께 가진 전문가집단이란
점에서 전시회 박람회 등을 운영하는데 적격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벤트의 종류도 단순한 판촉행사나 대리점주를 대상으로 한 상품설명회
등에서 벗어나 문화사업 박람회운영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음악 뮤지컬 연극 미술전 등 공연흥행사업도 전문인력의 부족과 흥행에
실패했을 때의 위험으로 인해 아직은 미미한 실정이지만 소득수준 향상과
함께 성장성이 높은 신규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광고사들은 특히 전시장을 직접 설계하고 꾸미는 스페이스디자인분야로도
사업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기업홍보관 미술관 상가 등 각종 시설을 직접 설계 운영함으로써
새로운 마케팅기회를 찾는 것이다.

"백화점의 디스플레이에서 신도시 개발까지"라는 구호처럼 광고사들의
전시사업은 조그만 매장설계에서 공항이나 위락단지 구성 등 테마파크를
조성하는데까지 확대되고 있다.

프로모션 분야중 최근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스포츠마케팅이다.

94년 애틀랜타올림픽과 히로시마아시안게임 등 굵직굵직한 대형
스포츠행사를 치르며 각광받기 시작한 스포츠마케팅은 2002년 월드컵을
한국과 일본이 공동개최하며 더욱 조명을 받고 있다.

국제적인 스포츠이벤트는 광고시장 특수를 몰고오는 것 외에 휘장사업권
형태로 스포츠마케팅의 본격적인 개화를 가져왔다.

스포츠마케팅은 기업들이 대형 스포츠이벤트나 선수단을 후원함으로써
그에 상응하는 광고효과를 얻으려는 것이다.

스포츠는 특히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데다 기업이 건전한 체육행사를
후원한다는 명분까지 얻을 수 있어 최근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코카콜라 제록스 코닥필름 등이 올림픽의 단골스폰서로 나서며
세계적인 브랜드 인지도를 얻은 것이 대표적인 스포츠마케팅 사례다.

스포츠마케팅은 보통 대회 명칭 자체에 기업의 이름이 들어가는
타이틀스폰서에서부터 부문별로 후원금을 내는 서브스폰서 등 스폰서십이
일반적이다.

여기에 대회에 필요한 각종 기자재를 납품하는 서플라이어나 입장권
TV중계권을 판매하기도 한다.

행사를 후원한 업체들은 보통 "<><>대회의 공식 후원업체"라는
타이틀과 함께 자사제품에 대회의 마스코트나 엠블럼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다.

광고대행사의 입장에서도 스포츠마케팅은 장사가 잘되는 분야로
특히 관심이 높다.

스포츠행사는 홍보효과가 커 상대적으로 스폰서 모집이 쉬운데다
대회운영에 따른 수수료율이 25% 선으로 신문 방송 등 4대 매체의
광고대행수수료인 15%선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국내 세일즈프로모션산업은 아직까지 초기단계라는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기존 광고업에 비해 이론적인 바탕이 취약할뿐더러 전문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광고주 또한 광고효과에 대한 신뢰가 약한 편이다.

그러나 소비자에 대한 직접적인 판매효과 등이 높아 21세기에는
황금시장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특히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른 각종 지역개발이벤트의 증가, 세계화에
따른 해외이벤트의 증가등은 전문적인 이벤트서비스를 요청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날로 늘어나는 수요에 대비해 국내 광고업체들이 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매체 개발과 선진노하우 습득, 우수한
전문인력양성 등에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