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져서 못입게 된 겨울외투를 여름에도 걸치고 있는 사람을 상상해보라.

그 모습이 바로 과도한 정부규제로 고전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나라
모습이다.

그러나 지난 30여년에 걸쳐 우리가 이룩한 압축고도성장의 많은 부분이
그 작은 외투 덕분이었다는 것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망각하고 있다.

규제개혁전문가를 자처하는 일련의 선동가들은 무조건 그 외투를 벗어
던지라고 한다.

그러나 갈아입을 적당한 옷이 마련되기 전에 그 외투를 벗어 던지는
것은 그대로 걸치고 있는 것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

규제개혁을 통해 우리에게 알맞는 옷을 마련하는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전문인력과 예산이 필요하다.

규제완화가 비용이 별로 들지않는 손쉬운 정책이라고 생각 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정부규제는 기업활동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규제는 각종 법령에서부터 시작해서 훈령 예규 고시 등에
산재해 있으며 그 분량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세부규제 하나하난가 규제담당
공무원이나 그 규제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피규제자가 아니면 그
내용이나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이다.

필자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규제완화 연구자들은 "규제완화 원론"의
전문가일 뿐, 세부규제에 이르면 그 경제적 효과는 고사하고 내용조차
제대로 모르는게 현실이다.

우리 경제의 모든 규제를 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가 있다면 그는
거짓말의 대가이거나 신이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현대 정보경제학의 가장 큰 발견 가운데 하나는, 우월한 정보를
가진 쪽에 의사결정을 맡길 때 효율성이 증대된다는 것이다.

규제완화와 관련하여 가장 우월한 정보를 지닌 쪽은 규제완화원론
전무가나 정치가가 아니라 규제담당 공무원과 그 규제를 직접적으로
받는 기업 및 국민들이다.

민간의견수렴이라는 명분과 장점에도 불구하고 민간기업이나 이익단체들이
규제완화 과제 발굴과 대안 제시의 주도권을 장악할 경우 정부의 교유한
정책권한이 실종되고,나아가 민간기업이나 이익단체들에게 정부가 "포획"
당할 위험이 있다.

공무원들에게 규제개혁 작업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고 비판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다.

규제완화는 많은 경우 규제담당 공무원의 기득권 포기를 의미하므로
공무원 규제완화 과제를 발굴하고 대안을 제시할 인센티브가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학자들의 주장에는 두가지 맹점이 있다.

첫째, 공무원이 규제완화 인센티브를 높여주는 방법을 찾는 것이
바른 길이지, 정부정책을 이익단체들에게 포획 당하도록 버려두는
것이 바른 길은 아니다.

둘째, 모든 공무원을 규제옹호자로 분류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이다.

필자는 공무원을 그 직급에 따라 3가지로 분류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본다.

첫 번째 그룹은 장.차관을 중심으로 하는 고위공무원으로, 이들은
직책상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규제개혁 작업을 어렵게 만든 데는 언론의 대안없는 양비론이
일반국민들로 하여금 규제완화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도록 유도한
잘못이 크다.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 대형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언론은 경쟁을 통한
튼튼한 건설산업의 육성보다는 정부의 강력한 규제를 촉구하고 나서지
않았는가.

언론이 규제완화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규제완화 과정에 대한 국민들의
인내심을 길러주고, 나아가 고위공무원을 여론으로 설득시켜야 한다.

두 번째 그룹은 국.과장과 사무관을 중심으로 하는 중간 엘리트
계층으로, 이들은 규제의 기득권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유스러우며,
일단 맡겨진 업무에 대해서는 정책추진의 열의가 대단하다.

규제개혁 작업의 본격적 추진을 위해서는 이들을 대거 동원할 필요가
있으며, 그 구체적 방법으로는 "별도정원"공무원을 활용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별도정원 공무원이란 중앙부처에 자리가 없어서 외곽으로 떠도는
공무원을 지칭하는 말로 은어로는 "인공위성"이라 부른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두 번째 그룹의 중앙부처 별도정원은 1,000명을
넘어선다고 한다.

유학 연수등 꼭 필요한 별도정원을 인정하더라도, 이 그룹에서 동원할
수 있는 공무원은 상당수에 달하리라 생각한다.

마지막 그룹은 규제실무를 담당하는 중.하위직 공무원으로,이드르이
규제완화 인센티브가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효과적인 규제개혁을
위해서는 이들의 전문성을 반드시 활용해야 한다.

필자가 지난 9월 4일자 "시론"에서 제시한 "규제예산"제도가 이들의
규제개혁 인센티브를 높이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