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다 자라면 어미곁을 떠난다.

둥지에서 벗어나 푸드덕거리던 아기새는 몇차례 날개짓을 하다가 나는
법을 깨닫는다.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어미새가 물어주는 벌레를 받아먹던 아기새는 이제
자기의 삶을 찾아 정든 둥지를 떠나 홀로 날아간다.

최근에 "늘하늘 스쿨"이라는 행글라이딩 이벤트업체를 설립한 한수정대표
(25)도 마찬가지다.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도 여자라는 이유로 욕심껏 일할수 없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고 싶어 독립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국내 유일의 여성 행글라이더 교관, 92년 행글라이더 전국대회 여성부
우승, 초경량항공기(ULM) 자격시험 첫 여성 합격, 96년 행글라이더
전국대회 2라운드에서 남자들을 제치고 여성으로는 첫 우승, 초경량항공기
여성 첫 단독비행...

여러가지 화려한 경력으로 매스컴을 장식하던 그녀가 지난 7월 독립해
회사를 차렸다.

늘하늘 스쿨은 행글라이딩 패러글라이딩 등 항공스포츠를 일반인에게
교육하고 비행이벤트를 기획 추진하는 곳.

한국활공협회가 공인하는 32개 항공레포츠 교육기관 가운데 여성이
운영하는 유일한 업체다.

그동안 한수정씨는 "날개클럽"이라는 교육.이벤트업체에서 행글라이더
교관으로 일해왔다.

지난 89년 행글라이딩에 입문한 이래 날개클럽은 그녀의 둥지였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교관일에 전념하면서는 생명줄과도 같았다.

이곳에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유롭게 하고픈 일을 하고자 독립하는 길을 택했다.

물론 창업의 길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교관으로 활동했지만 회원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노하우를 많이 쌓지는
못했다.

투자자금이 적어 덩치를 키우는데도 한계가 있다.

여자에 대한 막연한 불신과 사회적 편견도 발목을 잡는다.

매스컴에 화려하게 등장할 때는 날개클럽이라는 둥지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혼자다.

하늘을 나는데 일가견이 있는 그녀도 사업을 새로 시작한 점에 있어서는
병아리인 셈이다.

현재 수강생으로 가르치는 인원은 20여명에 불과하다.

행글라이딩 행사도 다른 클럽에 비해 작은 규모로 치러진다.

교관으로 도와주는 몇사람을 빼고는 직원도 달리 없다.

적자를 보고 있지는 않지만 수입도 많은 편은 아니다.

당장은 아쉬우나 먼저 해야할 일이 있다.

내년 1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리는 행글라이딩 세계대회에 한국
여성대표로 출전해야 한다.

그 준비로 일을 크게 벌일수 없다.

대회를 끝내면 한수정씨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벌일 생각이다.

행글라이딩 패러글라이딩과 함께 초경량항공기 교육에도 나서 본격적인
항공스포츠 이벤트업체로 발돋움하겠다는 비전.

"바람이 세차게 불거나 기상이 안좋은데 "나는 베테랑이니까 충분히
탈수 있어"하는 배짱은 통하지 않아요.

바람의 속도 방향 고도 등을 고려해 자연스럽게 날아야 안전해요"

그녀는 자연을 벗삼아 즐기면서 자연의 위대함과 섭리에 경외심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조급한 욕심을 버리고 성실하게 순리에 따르다보면 새로 시작한 일도
자연스럽게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땅에서만 다니다 하늘을 날면 먼 곳까지 보게 된다.

하늘에 있으면 마음이 넓어지고 한없이 여유가 생긴다.

오랜 비행으로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깨달은 그녀는 조급함을 버리고
차근차근 일을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계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다음 세계를 선택한다"고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톤은 말했다.

둥지를 벗어난 그녀도 이제 새로 선택한 세계의 먼 곳까지 보기 위해
하늘높이 나래를 폈다.

날아라 병아리!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