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과 전경련이 15일 잇달아 "복수노조 절대불가" 원칙을 재확인함으로써
막판에 새로운 국면을 맞는듯 했던 노개위 활동이 또 다시 벽에 부딪치게
됐다.

노동계가 변형근로 및 정리해고제를 수용하고 경총이 복수노조문제에 대해
양보함으로써 막판 극적합의를 이룬다는 "해피엔딩 시나리오"가 완전히
틀어져 버린 것이다.

재계가 이처럼 복수노조허용 문제에 대해 기존의 톤보다도 훨씬 강하게
반대하고 나선 것은 노개위가 노동법개정을 서두르면서 자칫 사용자의
양보를 전제로한 개정안을 밀어붙일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일선 사업장에서는 노총과 민노총이 특유의 "김빼기 작전"을 벌이면서
노동법개정에서 사용자만 손해볼 가능성이 높다는 걱정의 소리가 한층
높아진 상태다.

이런 현장 분위기를 반영하듯 이날 회의는 어느 때 보다도 기업임원들의
강경론이 많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경총의 "30대그룹 노무담당임원회의"에선 "왜 사용자 단체가 노사관계
개혁에서 질질 끌려만 다니느냐"는 비난이 쏟아질 정도로 기업의 일선
임원들이 복수노조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오후에 열린 전경련회의에서도 "이미 노동계에 노조정치활동조항을 양보
했는데 복수노조까지 줄 생각이냐"는 질책이 쏟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회의는 이같은 재계의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노동계의 김빼기작전에도
총체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소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남홍 경총부회장이 회의 직후 "복수노조를 허용키로 했다는 언론보도는
완전히 오보"라고 강하게 말한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조부회장은 오히려 복수노조허용의 전제조건들을 새롭게 내놓고 이런
전제가 관철되지 않으면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경총이 이날 내건 조건들은 <>고용유연성 확보를 위한 정리해고제등 도입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관행 파기 <>무노동무임금 원칙의 확립 <>파업기간중
대체근로허용 <>교섭창구의 일원화등이다.

"노조전임자 임금문제만 해결되면 상급노조에 대해 복수노조를 허용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걸음 더 나간 내용이다.

노동계가 자꾸 김빼기 작전으로 나올 경우 경영계 역시 한치의 틈도 보이지
않겠다는 입장표명인 셈이다.

노사전문가들은 그러나 복수노조문제도 막판 합의 여지는 많이 남아 있다고
보고 있다.

민노총이 15일 아침 변형근로제등을 수용하겠다는 14일의 입장을 번복
하지만 않았어도 경총 역시 복수노조 문제를 상당부문 양보할 수도 있었다는
분석이다.

경총은 "민노총이 변형근로제와 정리해고등을 받아들이고 경총은 개별
사업장에서도 복수노조를 허용키로 했다"는 기사가 가판으로 나온 14일
저녁에만 해도 "사실과 다르다"는 팩스만을 각 언론사에 보냈을 뿐 애써
부정하진 않았었다.

전문가들은 경총의 이런 태도는 민노총이 유연화정책들을 받아들일 경우
경영계도 화답하는 의미에서 복수노조를 허용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결국 현재의 상황은 복수노조라는 카드를 들고 있는 경영계와 변형근로
정리해고제라는 카드를 들고 있는 노동계가 "막판 배팅"을 앞두고 눈치를
보고 있는 형국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핵심쟁점사항들을 다시 협의해 노동법개정안을 최종 도출할 18일 노개위
전체회의에서 복수노조문제가 어떻게 정리될지 주목된다.

< 권영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