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에서 맞는 바람은 신의 은총이다.

초가을 햇살 아래 맞는 바람은 더욱 그러하다.

바람은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 뒤를 돌아보라, 그리하여 더 먼 곳을
응시하라고 늘상 요구하곤 한다.

그것은 신의 섭리이자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메시지일 것이다.

우리회사의 "산을 생각하는 모임"은 84년에 발족했다.

동우회라지만 말인즉 그렇다는 뜻이지 특별한 체계가 갖추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배낭을 짊어지면 그뿐, 넓고 깊은 산자락의 안온한 평화에
익숙해진 우리들의 모임이고자 했다.

김태곤 상무님의 주도 아래 박선칠 본부장 김중래 실장 송한규 팀장
최우봉 팀장 등과 더불어 한라에서 백두까지 얼마나 많은 산녘을 헤집고
다녔는가.

지리산에 묻히고 설악산의 산등성이에서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들 삶의
궤적을 뒤돌아 볼수 있어 좋았다.

깊은 심호흡을 한 후 뒤돌아보는 과거의 편린은 차갑게 느껴지는 자기
정리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슬픔같은 부끄러움일지라도 그것은 차라리 절대적인 희망이고 용기일
뿐이었다.

94년 김승 원장의 취임에 따라 우리 모임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즉 토요산행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토요산행은 원거리일 필요가 없다.

숲이 있고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래서 그곳의 산자락에서 우리 모임은 우리가 지금 어디에서 있으며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스스로 되묻곤 했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토론의 장이 마련되는 것이다.

직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격의없이 이루어지는 우리의 토론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아 아름답기 그지없다.

주제가 따로 있을까.

그저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내면 되는 것을.

그러나 이러한 산상토론회를 통하여 우리는 참으로 많은 일들을
구상하고 창조해낼 수 있었다.

우리 일터의 새로운 진로를 위한 크고 작은 일들, 직원의 지적 함양을
위한 보험전문강좌의 개설, 테마여행의 구상, 직제 및 인적배분의 효율성
제고방안 수립 등 간단치 않은 일들을 소화해낼 수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참가인원은 헤아리지 않을 것이다.

넉넉한 토론의 장이 마련되고 하산후 생맥주 한잔 기울일수 있는 여유만
있어준다면 우리는 오르고 또 오르고,천착하고 또 천착하는 모습을 간직할
생각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