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질랜드 공무원들은 외국손님을 맞이하느라 바쁘다.

미국 일본 유럽 등지에서 뉴질랜드 개혁을 기본 모델로 삼아 한수 배우러
오는 외국관리들이 줄을 섰기 때문이다.

한때 뉴질랜드는 살인적인 물가고, 바닥을 기던 경제성장, 눈덩이처럼
불어나던 재정적자로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그러던 뉴질랜드가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으며 세계무대로 화려한
복귀를 했다.

"경제개방도" 1위, "정부생산성" 3위, "국가경쟁력" 8위.

한마디로 줄곧 꼴찌에서 맴돌던 뉴질랜드가 하루아침에 우등생으로
변신한 것이다.

지난 80년대초부터 남태평양의 외딴 섬나라를 뒤흔들었던 10년 개혁의
결실을 지금 수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뉴질랜드 개혁은 개혁의 "바이블"로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다.

개방과 자유경쟁으로 특징지어진 시장경제체제 도입에서 효율성 극대화를
모토로 내세운 공기업 민영화에 이르기까지 뉴질랜드 개혁은 정치 경제
사회의 거의 모든 부문에 커다란 변혁을 불러 일으켰다.

이중에서도 정부부문개혁은 가히 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질과 양적인
면에서 획기적이었다.

뉴질랜드는 지난 88년 공공부문법과 그 이듬해 공공재정법 제정으로
행정투명성 제고와 비효율성 척결을 위한 정부개혁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 단적인 예가 공무원의 대폭적인 감원이다.

개혁초기 8만명에 이르던 공무원 숫자가 오늘날 그 절반수준인 4만명으로
줄었다.

심지어 전체 인원이 10여명안팎인 부처도 있다.

이같은 축소에도 불구하고 업무 효율은 오히려 크게 향상됐다.

이것을 가능케 했던 주요인은 무엇보다 각부처의 정책입안부서는 그대로
남겨두고 그외 집행및 사업부서는 과감히 민간으로 이양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통부의 경우 항공교통관제업무 교통안전담당업무 기상업무 등
민간기업이 더 효율적으로 운영한다는 판단이 서면 무조건 넘겨 버렸다.

정부개혁의 또 다른 특징은 부처의 "기업화"다.

이에 따라 부처의 실질적인 장은 기업회장에게 붙여지는 CEOs(Chief
Executive Officer)에서 본딴 CEs(Chief Executive)로 불린다.

즉 정부부처가 하나의 기업인 셈이다.

정부와 계약제로 고용된 CE는 직원의 채용 해고 등 인사권을 갖는다.

이전에 총무처에서 일괄적으로 채용, 인력을 분배하던 방식을 버렸다.

따라서 각 부처의 자체적인 판단에 의해서 직원을 채용 또는 해고한다.

공무원 월급도 과거 고정급에서 인센티브제도를 도입한 성과급으로
전환했다.

열심히 일한 만큼 대가가 돌아온다는 경제원칙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으로 악명이 높았던 공무원사회에 일대 변혁의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것이었다.

그만큼 효율적인 인사관리가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또한 지난 94년 제정한 회계책임법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뉴질랜드만의 독특한 법으로 정부개혁의 백미라 할수 있다.

정부계정에는 마치 개인 기업처럼 공공 자산과 채무에 대한 대차대조표및
누진액에 계산된 수입지출의 운영계산서가 포함되어 있다.

부처는 책임있는 회계관리원칙을 채택하고 회계목표를 공표해야 한다.

CE는 연초에 세운 목표치 달성에 실패할 경우 당연히 물러날 각오를
해야 한다.

자율과 책임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제도가 도입된 이후 공공부문의 지출도 대폭 줄었다.

대신 행정부문의 생산성제고를 통해 정부지출의 질과 효율을 극대화하는
재정관리체제를 확립했다.

공공부문법과 공공재정법의 직접적인 영향은 받지 않았지만 중앙은행도
89년 중앙은행법 제정과 함께 정치적 입김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립성을
확보할수 있었다.

그러나 중앙은행장에게 여하한 경우에도 인플레율을 0~2%대로 잡아놓아야
한다는 구체적인 임무가 주어졌다.

만약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중앙은행 총재는 당장 옷을 벗어야 한다.

물가잡기 선봉에 나선 중앙은행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비용절감에 있어서
솔선수범했다.

이에 따라 중앙은행의 연간 예산규모는 지난 91년 5,670만NZ달러에서
95년 3,510만NZ달러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오는 2000년에도 은행의 몇몇 새로운 시스템도입으로 추가비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4,000만NZ달러 범위내에서 살림살이 규모를 짜맞춰야
한다.

6년전 600명에 달하던 직원수도 그 절반인 300명으로 줄었다.

돈 브래시 중앙은행총재는 이같은 성공적인 정부개혁의 배경으로 확고한
목표설정과 강력한 리더십을 들었다.

일단 하나의 목표가 세워지면 좌우를 살피지않고 지체없이 그곳을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갔다.

물론 미래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부를 믿고 따라가는 국민과 그런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않는 정부,
이들 사이의 신뢰확보도 개혁성공의 디딤돌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도 김영삼대통령 집권직후 정부부처 통폐합 등을 통해 "작은"
정부를 추구해 왔다.

그러나 요즘들어 용두사미격으로 슬그머니 꼬리를 감춘 한국정부 개혁에
뉴질랜드 개혁이 시사하는 바는 클수 밖에 없다.

< 김수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