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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광직칼럼] 역사의 교훈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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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 중종5년(1501)에 일어난 "삼포왜란"은 학자들이 한국사를 기술할
    때 단 몇줄 정도로 소개하고 넘어가는 왜인들의 반란사건이다.

    왜인 거주지역의 거류민들과 대마도인 4,000~5,000여명이 기습작전으로
    동래성과 웅천성을 함락시킨 이 사건은 대국으로 섬기던 조선을 얕잡아보고
    저지른 최초의 대규모 도발행위였다는 점에서 보면 중요하다.

    난은 3,000여명의 집중적인 병력투입으로 20여일만에 평정됐지만 조선의
    피해는 컸다.

    살해된 사람이 272명, 소실된 가옥이 789채였다고 "중종실록"에는 간단히
    기록돼 있으나 실제 피해는 그보다 훨씬 심했을 것이다.

    근 100여년 동안 평화에 젖어 나라방위에 힘쓰지 않다가 졸지에 당한
    변고였다.

    부산포첨사 이우증은 속옷만 입은채 건초더미 속에 숨었다가 난도질을
    당해 죽었다.

    제포첨사 김세균은 성을 넘어 도망치다가 사로잡혔다.

    웅천현감 한윤도 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밤을 틈타 대마도에서 수백쌍의 배가 들어왔는데도 아무도 몰랐다.

    해안방비는 이처럼 허술했다.

    대마도인들은 난의 표면적 원인으로 부산포첨사의 학정을 내세웠지만
    실은 연산군의 폭정 때문에 문란해진 행정체계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중종이
    일본인들의 통제를 강화했기 때문에 일어난 거센 반발이었다.

    "화친을 하지 않으면 내륙 깊숙이 쳐들어 가겠다"고 왕을 협박까지
    한 것을 보면 조선이 그만큼 허술하게 보인 것이 확실하다.

    남쪽 변방의 지원군 요청을 받은 조정은 속수무책이었다.

    화친을 청해 적의 공격을 늦추자는 대신도 있었으나 적을 섬멸시켜야
    한다는 다수의 의견에 따라 황형과 유담년을 방어사로 삼아 30명씩의 장교를
    대동하고 출정하도록 했다.

    서울의 인심이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원정군으로 전장에 나가게 된 자들이 대낮에 대로에서 부녀자를 희롱하고
    난장패들이 흉악한 짓을 해도 의금부가 손을 쓰지 못했다.

    변방 왜인들의 변란이 서울까지 뒤흔들어 놓았다.

    조정의 고위관리들은 가족들을 서울로 피신시키기에 바빴다.

    좌의정 유순정, 우의정 성희안은 현지에 내려가지 않으려고 도원수 자리를
    서로 미루는 추태를 부렸다.

    유순정은 "늙은 탓으로 정신이 혼미해져 사려가 분명하지 못하다"고
    둘러댔고 성희안은 "왼쪽 다리를 절고 습진 때문에 말을 탈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사양했다.

    결국 왕의 강권으로 유순정이 도원수가 되어 떠났지만 그 때는 이미
    보름이 지나 난이 거의 평정돼갈 무렵이었다.

    급한대로 일단 원군을 보낸 중종은 교서를 내렸다.

    그 교서에서 그는 "새알을 눌러 깨치기 어려우랴"라는 말로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있는 대목이 인상깊다.

    "왜노의 변을 당하여 성희안이 대단히 근심하고 두려워하다가 난을 평정한
    것을 다행스럽게 여겨 싸움도 하지 않고 도망한 첨사들의 죄를 덮어주고
    뒤에 경솔히 왜노와 화친을 허락하여(1512년) 그들이 우리를 경멸하는
    단서를 열어놓았다"

    "중종실록"에 이렇게 적어 놓은 사관도 그로부터 80년 뒤 임진왜란이
    일어나 국토가 초토화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관은 "삼포왜란"기록을 끝내고 말미에다 아주 흥미로운
    기록을 한가지 덧붙여 놓았다.

    조정에서 급한 김에 뇌물죄로 파직됐던 황형을 방어사로 기용하자 그가
    집문 앞에 나와 팔목을 걷어붙이며 큰 소리로 떠들었다는 내용이다.

    "나는 가물 때의 나막신 같아서 장마철이나 돼야 쓰일뿐이다"

    그의 인품이야 어찌됐든 당시 정치권에서 소외당했던 무인들의 마음을
    이처럼 잘 드러내 보여주는 사료는 다시 없을 듯 싶다.

    지난달 북한의 무장간첩을 태운 잠수함이 동해에 침투한 이후 국민들은
    남북의 팽팽한 긴장속에서 불안하기만하다.

    북한은 "백배 천배의 보복"이니 "피에는 피로" 등 소름끼치는 위협을
    그치지 않고 있고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의 경각심을 높이려는 뜻에서인지
    "테러방지를 위한 요인보호"계획까지 발표해 곧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듯
    위기의식을 불어넣고 있다.

    대통령과 3당 대표가 한자리에 모여 안보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북, 도발
    땐 준엄한 응징"을 한다는데 의견를 같이했다는 응당 있을 법한 뉴스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더군다나 대통령이 야당대표들에게 "최악의 경우에는 일전불사를 결의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는 보도는 안보에 관해 아직 아무런 내용도 듣지
    못하고 있는 국민들을 한층더 깊은 불안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다.

    역사는 우리에게 현재를 살아가는 교훈을 주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설명이다.

    그것이 바로 역사의 실용가치라고도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국가의 안보를 소홀히 해 방비를 허술하게 한 것은
    아닌지, 군의 기강이 너무 해이해진 것은 아닌지, 문민정부를 내세우느라
    군의 사기를 떨어뜨린 것은 아닌지, 또 제대로 장군을 키우지 못한 것은
    아닌지 정부가 곰곰이 생각하고 잘못된 것은 빨리 고쳐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리고 불안속에 빠져 있는 국민들을 위해 대통령은 "새 알을 눌러 깨치기
    어려우랴"라는 식으로라도 안보에 대해 설득력있게 설명하고 격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손자의 병법에 따르면 북한은 우리를 성나게 하여 흔들어 놓고 스스로를
    낮추어 우리를 교만하게 만드는 전법을 쓰고 있는 듯하다.

    이에 대응하는 우리의 전법은 정석대로라야 한다.

    그것은 먼저 적의 전략을 치고 그 다음은 외교관계를 이용해 적을
    고립시키고 그 다음은 적의 병력을 치는 것이다.

    손자는 이것을 전쟁에 이기는 방법이라고 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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