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의 화두인 세계화는 지구촌 사람들과의 보다 빈번한 만남을
의미했다.

국제교류의 확대를 위한 우선과제는 무엇보다도 의사소통.

국제회의 통역사-일명 동시통역사-는 바로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낯선 사람들끼리 정치 경제 과학등 각종 분야의 의견을
교환하거나 설전을 벌이는데 필요한 최상의 커뮤니케이션을 제공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세계화의 첨병" "국제화의 견인차"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시통역은 통역실(부스)안에서 이루어지는데 국제회의의 경우 반드시
2인이 1조를 이뤄 20~30분씩 번갈아가며 통역을 하게 된다.

흔히 동시통역을 연사의 발언과 한치의 오차없이 통역하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동시통역이란 연사의 발언을 "거의
동시에" 청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옮기는 일이다.

혹자는 동시통역을 마라톤 생중계에 비유하기도 한다.

즉 방송캐스터가 마라톤 선수의 역주를 쉬지 않고 시청자에게 전달하듯이
동시통역사는 연사의 연설을 2~3초의 차이를 두고 청중에게 계속 생중계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동시통역은 고도의 집중력과 강인한 체력을 필요로 한다.

대여섯 시간동안 계속되는 회의에서 연사의 말 한마디, 토씨 하나
놓치지않기 위해 초긴장 상태로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은 웬만한
정신력과 체력을 가지고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연사의 발언을 종합.분석하고 예측하기 위한 논리적
사고력, 예기치 못한 일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순발력등이 통역사가
갖춰야할 필수적 자질이다.

물론 뛰어난 언어구사력이야 말할 필요도 없는 기본.

뿐만 아니다.

국제화의 기수답게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세상
돌아가는 것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언제 무슨 분야를
만나게 될지 모를 상황을 대비해 평소에 다방면에 걸친 연구를 해야
한다.

때문에 자기 계발에 소홀하거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적 호기심으로
불타지 않는 사람들은 살아남기 힘든 직업이기도 하다.

앨빈 토플러같은 사람은 자신의 강연을 완벽하게 청중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강연에 앞서 동시통역사와 2~3시간 대화를 나누는 경우도 있다.

동시통역사가 대중앞에 전격 등장한 것은 지난 걸프전.

당시 CNN이 보도하던 생생한 전쟁 현황을 "생통역"하며 보여준 이들의
맹활약은 국제화 시대를 앞서 나가는 고급 전문인력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통역사는 고소득이 보장되는 직업이다.

보수는 회의 시간당 받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하루 평균 60만원선.

국제회의가 많이 열리는 봄.가을 성수기에는 일급 통역사의 경우
월 1,000만원에 가까운 소득을 올린다고 한다.

각국 대사관 상공회의소 기업체등에 상주하는 고정직 통역사들의 수입은
월평균 200만~400만원 정도.

하지만 이들이 자유로움이나 고소득을 직업의 보람으로 꼽지는 않는다.

빛에는 항상 어두움이 따르게 마련.자유로움과 동반되는 고독.비.성수기가
뚜렷한 계절성은 남들이 모르는 애환이다.

따라서 이들은 항상 새로운 분야를 접하는데서 맛볼 수 있는 도전의식,
통역사를 가교로 현안이 해결되었을 때의 만족감, 언어들이 부딪치는 치열한
현장감등에서 기쁨을 찾는다.

전세계가 "무역전쟁"의 시대로 들어선 요즘, 국가간 통상협상은 점점
잦아지고 있다.

또한 문화 학술 정치할 것 없이 다양한 분야에서의 폭넓은 교류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세계가 활짝 열리고 있고 따라서 동시통역사들의 발걸음은 갈수록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

< 김혜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