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코스의 생명은 그린이다.

아무리 회원수준이 높고 주위경관이 좋은 골프장이라도 그린상태가
엉망이면 일류 골프장이라고 말할수 없다.

그린은 세심한 주의와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골프장마다 가장 심혈을
기울여 관리한다.

그래서 그린을 관리하는 사람한테 "그린키퍼"라는 명칭이 붙여졌고,
외국 골프장에서는 그린키퍼의 명령이 사장 명령 못지않게 위력을 발휘한다.

그린키퍼는 우선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점때문에 국내골프장에서는
지금까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몇몇 골프장들이 여성을 고용, 남성 못지않은
그린관리를 하고 있어 호평받고 있다.

아직 그린 전반을 관리하는 그린키퍼 수준까지는 못미치는 "예비그린키퍼"
라고 할수 있지만, 한국 최초의 여성그린키퍼를 꿈꾸고 있는 당찬 여성들이
여럿 나타나고 있는것.

대표적인 곳이 경기CC와 안양CC이다.

경기CC (대표 김재일)는 지난해 이기선양(20)을 과감히 그린관리자로
채용, 다른 골프장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양은 여성특유의 섬세함으로 몇 mm의 오차를 다투는 그린을 마치
자신의 얼굴을 다루듯 세밀히 관리한다.

이양은 특히 시각적 그린을 조성, 골퍼들의 기분을 돋우는데도 신경을
쏟는다.

외국 유명골프장에서 하는 것처럼 그린전체를 반듯한 격자무늬 모양으로
롤링해 우선 보기좋게 만들고, 골퍼들이 퍼팅라인을 재는데도 참고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입사 2년째인 이양의 일과는 새벽 3시30분에 시작된다.

첫팀이 오기전에 그린을 깎고 이슬을 닦기 위함이다.

편한 사무실근무를 버리고 그린키퍼가 되기까지 고민도 있었으나
무엇인가 "전문적인 일"을 찾고자 스스로 험난한 길을 택했다는 것이
이양의 말.

회사도 이양의 뜻을 높이 평가, 앞으로 국내 최초의 여성그린키퍼가
되는데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안양CC (대표 허태학)에는 현재 4명의 여성 그린관리자가 있다.

아직은 그린을 깎는 일이 주종이어서 본격 그린키퍼라고 말하기에는
이르지만 전체 7명중 4명이 여성 그린관리자라는 점에서 여성 그린키퍼의
탄생을 예감할수 있다.

나산CC (대표 이종규)도 경기.안양CC의 예를 본받아 곧 여성
그린관리자를 고용, 그린 구석구석까지 세심한 관리를 한다는 계획을
세워두었다.

골프장에서 가장 어려운 3D직종인 그린키핑분야를 남성들이 독점하던
시대도 이제 가고 있다.

< 김경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