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OO은행장
참조:xx지점장
제목:정기적금 해지 협조에 관한 건
내용:귀 은행의 xx지점이 본 예금주의 정기적금 해지 요청을 묵살하고
있어..

A자동차사가 얼마전 주거래 은행에 꺾기를 풀어 달라고 보낸 공문이다.

작년말 10억원을 빌릴 때 강제로 예치한 3년만기 1억2천만원짜리 정기적금
을 해지하고 싶다는게 요지였다.

당시 A사의 대출금리는 연 13%로 비교적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나 1년치 적금불입액(4천만원)에 따른 "꺾기 금리" 4%포인트를 합하면
실제 부담금리는 연 17%에 달했다.

이러니 적금해지 요청을 한 것은 당연했다.

A사가 꺾기를 풀어달라고 요청한 것은 올 3월초.

2금융권의 대출금리가 연 10%대로 곤두박질칠 때였다.

2금융권 금리가 1금융권 금리를 밑돌자 A사는 즉각 값싼 2금융권 자금을
빌려 10억원을 갚아 버렸다.

차입금을 갚았으니 적금을 돌려 달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문제는 공문을 발송한 다음 나타났다.

은행이 꺾기를 볼모로 3가지 굴욕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해지받는 대신 신탁상품에 가입하라, 아니면 적금 잔액으로 1년전 빌려간
3억원을 부분 상계(예금으로 대출금을 갚는 것)하라.

그것도 싫으면 약정 금리보다 불리한 중도해지이율을 적용받아라.

A사가 이들 조건을 듣지 않자 은행은 "앞으로 있을 거래를 한번 생각해
보라"며 "꺾기 친자권"을 무기로 "협박"까지 했다.

A사는 결국 OO은행장에게 보낸 공문을 없던 일로 하고 말았다.

"대출금을 갚았는데도 꺾기한 돈을 돌려주지 않는 처사와 사채놀이가
다를게 뭐 있습니까"(A사 자금담당 임원)

한번 당하면 원상 복구가 힘든 꺾기.

그래서 N기계 S사장은 꺾기를 금융행패로까지 몰아붙인다.

"명목금리는 겉치레일뿐이고 꺾기로 손을 더 벌리기까지 하니.. 무슨
물귀신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금리를 물리면 어떡합니까. 은행돈이라고 사채
보다 나은게 뭐 있습니까"

실제로 은행대출때 꺾기를 당하면 사채금리와 맞먹는다.

A사가 적금 해지를 요청할 때 사채시장에선 신용도가 좋은 A급 어음의
할인금리가 연 20%도 채 안됐다.

A사의 연 17% 금리는 그러니까 가히 악성 고리채라고 부를만하다.

꺾기는 고금리라는 점외에 그 태생에 있어서도 고리대금업과 다를게 없다.

우선 시장금리가 높을수록 기승을 부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자금난이 일면 기업은 3불문(금리 금액 기간)하고 돈을 끌어댕긴다.

이럴때 은행은 입맛대로 대출기업을 심사한다.

금리는 부르는게 값이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일수록 꺾기를 많이 당하는 것은 물론이다.

"중소기업들의 97%가 꺾기를 경험했으며 대출금의 56%에서 1백35%까지
당했다"는 감사원 조사 자료는 지금도 타당성을 갖고 있다는게 업계의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 연초(1월22일~2월1일) 30개 시중은행이 설을 맞아 정리한
꺾기가 총 1조2천8백34억원에 달하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꺾기금리"까지 포함한 기업들의 부담금리는 대만이나 싱가포르에
비해 4~5배나 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백보양보해 꺾기가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건 고전적수법이 없어졌음에
불과하다.

신종 꺾기가 더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출세일에 나선 보험사를 끼고 은행과 기업이 벌이는 스리쿠션
꺾기, 은행간 급전 거래때 예.적금이 오가는 콜꺾기, 대출 만기일을 연장할
때마다 기어이 꺾고 마는 아들꺾기와 손자꺾기 등이 그것이다.

꺾기가 날뛰는 것은 무엇보다 수신 실적 위주로 돼있는 은행경영의 구태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규제 금리 시절 정부가 긋는 금리 상한선을 의식해 꺾기로 가욋 금리를
받아 챙기던 악습이 그대로 잔존하고 있는 것도 꺾기의 주인중 하나다.

"꺽기사촌"도 여전히 문제거리로 남아 있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다고 하나 통상 대출금의 0.5%를 받는 사례비 명목의
대출 커미션과 은행원들을 모시는 접대비 등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이 모두를 합치면 기업대출금리는 연 20%선까지 치솟을 밖에.

그야말로 고혈을 짜내 달러금리(고리채이자를 일컫는 은어)를 주는 격이다.

기업의 금융 비용을 치솟게 만드는 꺾기와 커미션 금융 접대비 등 불건전
금융관행은 결국 금융권내에서 시정돼야 한다.

"우선 계수에 집착한 지나친 수신실적주의를 고쳐야 한다. 또 스스로
부실채권을 극소화하고 자금운용수입을 극대화해 수익구조를 향상시키면
꺾기는 상당 부분 없어질 것이다"(이정조 향영 21세기 컨설팅회사사장)는
지적이다.

정부도 책임을 져야 옳다.

은행이 구조 조정자금과 같은 정책자금 대출때도 꺾기를 해대는 실태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정책자금을 빌릴 수 있도록 해달라는 중소기업들의 목소리를 정말 경청해야
한다는 말이다.

당장 은행대출금리를 내리지는 못하더라도 명목 대출금리이상으로 부풀려져
있는 "+알파금리"는 반드시 제거할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금융당국이 존재하는 이유이고 목적이다.

< 정리=심상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