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아, 보옥아, 어디 있니?"

밖으로 나와서도 대옥이 여전히 보옥을 찾는 시늉을 하며 이 모퉁이
저 모퉁이를 기웃거렸다.

자견이 대옥을 부축하려고 해도 대옥은 어느새 자견의 팔을 벗어나
저만큼 달아나곤 하였다.

자견이 간신히 대옥을 인도하여 소상관에 도착하였다.

방으로 들어간 대옥은 이제는 침상에 쓰러져 요와 이불을 부여잡고
뭐라뭐라 중얼거리다가 잠이들었다.

아니, 잠이 든 것이 아니라 기절을 한것만 같았다.

자견은 설안을 불러 함께 대옥을 간호하며 훌쩍였다.

얼마 지난후에 대옥이 눈을 뜨고 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일어나
앉았다.

"아니, 너희들은 왜 여기서 청승맞게 울고 있니?"

대옥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어 자견과 설안이 다소 밝은 i
표정이 되었다.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

자견이 아직도 눈물 자국이 묻어있는 얼굴로 대옥을 바라보았다.

"내가 언제 괜찮지 않았니?"

그러면서 대옥이 침상에서 내려와 창가로 다가갔다.

자견과 설안은 다시 긴장되어 대옥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대옥은 창 너머로 어스름이 뜰에 깔리는 것을 내다보며 독백인듯
시구절인듯 가만히 웅얼거렸다.

"저기 어스름이 내리네. 죽음처럼 이별처럼 어스름이 내리네. 내님
떠난 뜨락에 해당화 핀들 무슨 소용있으랴. 아아아아"

대옥이 갑자기 두손으로 머리를 움켜쥐더니 머리카락을 뜯어낼 듯이
흔들었다.

대옥의 머리가 곧 산발이 되어 흘러내렸다.

자견과 설안은 서로 손을 맞잡고 몸이 굳어진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하하하, 어차피 인생은 회자정리가 아니더냐. 다, 떠나가라.

보옥이도 떠나가고 대옥이도 떠나가라. 하하하하"

대옥이 이번에는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 하며 카랑지게 웃어대고 있었다.

그러더니 자견을 돌아보고 언성을 높였다.

"넌 거기서 뭣하고 있느냐? 지금 당장 보옥 도련님에게 갈 채비를
하지않고"

"보옥 도련님한테는 방금 다녀왔잖아요.

도련님이 없어서 그냥 왔잖아요"

자견이 울상이 되어 두손을 모으며 대답했다.

"이런 맹추 같으니라구. 그러니까 다시 가자 이거지"

"그럼 우선 아가씨 머리나 다시 빗고요"

자견이 빗을 챙겨들고 대옥에게로 다가가 머리를 빗어 위로 올리고
비녀를 꽂아주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9일자).